[이준영 칼럼] 문 대통령의 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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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때는 2015년 11월.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김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영욕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후 그의 인생을 조명하는 사설을 맡게 됐다. 부산 출신의 거목이 쓰러졌으니 평소 같으면 여러 주제가 들어갈 사설란이 모두 그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신문사에선 이를 이른바 ‘통사설’이라고 부른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거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논평하는 형식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처럼 긴 분량의 사설을 쓸려면 품이 많이 들어가고 집중도 역시 최대한 높이게 된다.

YS, 고향 발전 위한 마음으로
국방부·군 강한 반대 불구하고
수영비행장 이전에 온 힘 쏟아

퇴임 후 귀향할 문 대통령도
지방 지킨 지도자로 남으려면
동남권 관문공항 결단 내려야



그러니 통사설을 쓴 이후에 오는 정신적 피로가 만만찮다. 한편으로 해당 주제를 공부한 보람도 그에 못지않다. 나름 가진 지식을 최대한 발휘해서 그런지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5년 전에 쓴 사설을 회고하는 이 칼럼 역시 그 증거 중 하나이다. 김 전 대통령의 행적이야 워낙 널리 알려져서 새로운 게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상세히 살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뇌리에서 희미해져 버린 내용이 떠올랐고, 잘 몰랐던 사항을 발견하는 수확도 있었다. 그 가운데 부산 수영비행장 이전과 관련된 후일담이 내 동공을 확대했고, 지금도 각인돼 있다.

현재 센텀시티가 화려하게 펼쳐진 곳은 과거 수영비행장 자리이다. 1996년 이전까지만 해도 군사보호 구역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국방부와 공군이 비행장 해제를 극구 반대했다. 이 단단한 매듭을 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다. 통수권자의 의중을 강력히 내비침으로써 반발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 행위가 정치적이든 아니면 국토균형발전 차원이든 그걸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당장 센텀시티가 부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보자. 수영구와 해운대구, 더 나아가 기장 지역까지의 발전에 센텀시티가 이바지한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YS와 센텀시티 간의 관계가 불현듯이 연상된 계기가 따로 있다. 바로 부산의 미래가 걸린 동남권 관문공항이다. 현재 이 사안은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검증위는 단답형 결론을 내지 않을 것으로 전해진다. 명확한 해답 대신 관문공항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나열하는 방식이 될 모양이다. 검증위 발표 이후에 관문공항 적합성을 최종 판단할 행정위원회나 협의체 구성이 거론된다. 국무총리실, 정부 부처, 부·울·경 지자체 차원에서 이런 내용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동안의 관문공항 진행을 되짚어보면 이런 조직의 구성과 절차 등을 놓고 지루한 소모전이 벌어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 조직 구성이 끝나도 여진이 사라지기 어렵다. 결정 과정에서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세월만 보내지 말란 법이 없다. 이전의 신공항 건설 무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지만, 인천국제공항 중심론자 등 반대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리되면 최종 결정권은 정부·여당의 몫으로 남게 된다. 관문공항을 정책적 대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단순히 공항 건설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다. 기존의 공항 수요뿐만 아니라 시설에 걸맞은 각종 경제, 문화, 교육 기능이 뒤따라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예산 낭비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서 반대론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 우선 2030년 부산 엑스포 개최가 유력한 변수가 된 상태이다. 이를 계기로 국토균형발전에 동남권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과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등도 이 지역의 존재가치를 올릴 호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부·울·경 주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귀향할 예정이다. 부산권 내 양산에 사저를 지을 부지를 이미 확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그동안 국토균형발전이나 지방분권에 기여한 바가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행보를 할지 실로 우려스럽다. 그렇게 하고도 고향 사람들에게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까. 이런 눈길을 한꺼번에 거둘 복안이 바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이다. 재임 중 그 초석을 닦아야 마땅하다.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공약했으니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먼 훗날 문 대통령의 생전 치적을 찾을 새까만 후배 논설위원을 머릿속에 상상해 본다. 그의 통사설에 이런 구절이 들어가길 소망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신공항 건설을 결단한 통수권자였다는 내용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귀거래사를 지어 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상정해 놓고 권한다. 혹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이 빠져 있다면 이제라도 추가하는 게 옳다고.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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