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80m 규제에 ‘서핑 붐’ 못 살리는 송정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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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 트렌드로 서핑이 주목받고 있으나 부산 송정해수욕장은 80m에 불과한 좁은 서핑 구간 탓에 수요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인다. 송정해수욕장 서핑구역에 서핑강습을 받는 서퍼들의 모습. 부산일보DB

생활 속 거리 두기, 힐링 액티비티 등 코로나19가 여행 트렌드를 변화시키면서 서핑이 새로운 트렌드에 부합하는 킬러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서핑 명소인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은 서핑 구간을 80m로 묶어 놓은 해묵은 규제 탓에 위기 끝에 찾아온 기회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23일 해운대서핑협회에 따르면 지난 주말 2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서핑을 즐기기 위해 송정해수욕장을 찾았다. 서프홀릭 신성재 대표는 “동호회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200명가량의 고객이 지난 주말 서핑을 즐기기 위해 숍을 방문했다”며 “6월 첫째 주말을 기점으로 이용객 숫자가 점차 예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 액티비티로 최근 각광
송정 서핑 레저존 80m밖에 안 돼
전문 서퍼들 넓은 바다로 떠나
군 하계휴양소 200m구간과 겹쳐
市 120m 확대 논의 수년째 교착

다른 관광업계가 그러했듯, 서핑업체들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로 한때는 매출이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할 정도로 타격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워터파크나 실내 수영장은 물론이고 다른 여행·레저업체들에 비해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다. 3m짜리 서핑보드에 올라서면 자연스럽게 생활 속 거리 두기 수칙이 지켜지는 데다, 힐링·에코·액티비티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여행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국의 서핑 수요를 부산 송정으로 얼마나 많이 유치하느냐이다. 송정 바닷가는 수심이 얕고 연중 수온이 따뜻하다는 자연적 이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국내 서핑 태동기인 2000년대 초반부터 서핑 교습소들이 형성돼 강습 수준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전국 3대 서핑 명소인 제주 중문과 강원 양양에 비해 송정의 유치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80m에 불과한 서핑 구간(해양레저존) 때문이다.

송정해수욕장의 전체 구간 길이는 1.2km이지만 일반 수영존이 920m, 군 하계 휴양소 구간이 200m로 설정돼 해양레저존은 80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서퍼들이 서핑보드를 깔고 엎드려 한참 동안이나 교대를 기다리거나, 옆 사람과 부딪쳐 가며 서핑을 즐겨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해변가에 밀집한 서핑 인파를 피하기 위해 수심이 깊은 곳으로 나가면, 안전 문제도 발생하겠지만 너울성 파도가 형성되지 않아 제대로 된 서핑이 불가능하다. 신 대표는 “송정에서 서핑을 배운 사람들이 서핑에 능숙해지면 넓은 바다를 찾아 송정을 떠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다”며 “제주와 양양은 송정과 반대로 수영할 수 있는 구간을 제한하고 서핑은 규제를 풀어 놨다. 때문에 ‘서핑으로 한 달 살기’ 등 서핑과 연계된 관광 프로그램이 날개 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올해 초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이번 여름 송정의 서핑 구간을 120m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군 하계 휴양소와의 구간 설정 문제로 여름 휴가철이 본격화한 지금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53사단 측은 단순한 휴양 시설이 아니라 전투 수영 등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 역시 규제혁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수년째 협의가 교착 상태인 사안인 만큼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며 “국방부와의 조속하고 원만한 협의를 통해 이른 시일 내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송정의 서핑 구간 조정이 답보된 상황에서 양양군은 42억 원을 투입해 내년께 ‘서핑 해양 레저 특구 조성사업’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산의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내세워 국내 여행 시장에서 강원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부산의 장기인 해양 레저마저 주도권을 빼앗기면 관광도시 부산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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