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맡긴 검역망, 부산항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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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부산 감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국적 냉동 화물선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선원들이 부산의료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 선박의 선원 21명 중 16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김경현 기자 view@

선원 17명이 무더기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러시아 선박이 부산항 입항 때 코로나 관련 증상자가 없다고 거짓 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 상태에 대한 점검을 전적으로 선사에 의존한 ‘셀프 검역 구멍’으로 부산항이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부산검역소와 중앙사고수습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전 8시께 부산항에 들어온 러시아 국적 냉동선박 아이스 스트림호(3933t)는 선원이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전자 검역을 받았다. ‘전자 검역’은 선박에서 제출한 코로나19 유증상자와 확진자 승선 여부 등의 전자 서류를 확인하고 검역증을 발급하는 방식이다. 검역당국은 이상이 없다는 아이스 스트림호 신고를 그대로 인정해 감천항 입항을 허가했다.

선사에 의존한 ‘셀프 검역’ 구멍
입항 당시 “이상 없다” 거짓 신고
선사 대리점이 선장 감염 통보

하지만 하역작업이 시작된 22일 오전 10시께, 이 배에서 16일 내린 선장 A 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국내 이 선사 대리점에 전해졌고 곧바로 대리점이 검역소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이후 진행된 검역당국의 승선검역에서 선원 21명 중 3명에게서 고열 증상이 확인됐다. 아이스 스트림호가 거짓 검역 신고를 한 것이다. 선원 21명 전수 검사 결과 16명이 확진됐고, 23일에는 같은 선사 소속으로 바로 옆에 정박한 아이스 크리스탈호 선원 1명이 추가로 확진판정을 받았다.

BPA와 해수청 등에 따르면 선원이 내리지 않는 경우에 한해 출항국가가 중국 이란 이탈리아가 아니면 간소화된 전자 검역 대상이다. 선원이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문제없다고 보고한 이번 사례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구조다. 만일 선사 대리점이 선장의 코로나 확진 사실을 검역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하역이 이뤄지면서 항운노조 노동자 61명에게 번져 지역사회 대유행이 시작될 수 있는 구조였다. 부산항에는 연간 2만여 척의 외항선이 입항하는데 터미널 운영사가 별도로 없는 감천항, 국제여객터미널, 감만 8부두, 감만 동측부두 등에서 하역하는 선박은 대부분 하선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자 검역을 진행하고 있다. 23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감천항 동편 1~3부두에 접안한 배 23척도 모두 전자 검역으로 입항했다.

검역 당국은 이번 러시아 선원 무더기 감염을 계기로 “러시아 선박에 대해선 특별 검역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땜질’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천항만 해도 러시아뿐 아니라 파나마, 토고 등 전 세계 선박이 입항하는데 러시아 선박만 특별검사 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의미다.

부산검역소 관계자는 “인력 부족 등으로 현재까지는 전체 국가에 대해 승선 검역을 하는 것은 무리”라며 “아이스 크리스탈호에 대해서는 검역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고 러시아 국적 선박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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