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야구소녀의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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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찬란 제공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그 일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꿈만 좇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꿈’을 노래하는 건 어쩐지 어리석어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도 천재 야구소녀 주수인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당차지만, 우직한 소녀 주수인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나와 우리에게 작은 위로를 던지기 때문이다.

수인은 고교 야구팀 유일한 여자 선수로 최고 구속 134km, 볼 회전력이 강점으로 한때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얻으며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학교에서는 핸드볼로 전향하기를 권유하고, 집에서는 취업하기를 바라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수인은 프로팀에 입단해 야구를 계속하는 게 꿈이지만, 그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천재 고교 투수 프로팀 입단 도전
유일한 여자선수로 기회조차 없어

남녀 문제 지적하는 영화 아니라
꿈 좇는 일 어려움 다루는 성장물
속도감보다 차분한 연출 돋보여


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찬란 제공
 




영화 ‘야구소녀’의 오프닝, 20년 만에 탄생한 여자고교야구 투수 수인의 기사가 실린 액자가 학교 복도에서 내려가고 리틀야구단부터 함께 야구를 한 정호의 프로 입단 소식이 실린 기사로 교체되는 장면을 비춘다. 현재 수인의 상황을 알려 주는 장면이다. 3학년 겨울, 동기들은 이미 프로로 가거나 대학 진학이 결정되거나 또는 야구를 그만두었지만, 수인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평가도 기회도 잡지 못했다.

수인의 꿈은 오직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여자 프로선수는 생소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이름이다. 그로 인해 수인은 프로팀에서 선발 테스트 기회를 주는 제도인 ‘트라이아웃’에 서류조차 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사고 놀림거리가 되지만, 수인은 한 번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은 누구보다 실력이 있다고 믿으며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입 코치 진태를 만난다. 진태는 수인의 신체적 약점을 극복할 무기인 너클볼을 익히도록 도움을 주며 빠른 공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한다.

‘야구소녀’는 수인이라는 여성 인물을 앞세워 여성이 진입하기 어려운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사실 영화 속 진태의 대사처럼 프로선수가 되는 건 여성이나 남성이나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로 인해 이 영화는 꿈을 좇는 일, 즉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수인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살필 수 있게 하는 성장 영화다.

꿈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수인의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기에 수인에게도 그런 삶을 강요했다. 하지만 수인의 경기를 본 후 딸의 인생을 응원한다. 몇십 년째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는 수인의 아빠는 딸만은 자신과 달리, 하고 싶은 꿈을 이루게끔 힘을 북돋아 준다. 진태는 처음엔 수인에게 프로의 꿈을 포기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수인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훈련을 돕는다. 그리고 트라이아웃에서 만난 여성 선수 제이미는 수인과 라이벌 관계지만, 꿈이라는 공통분모로 교감하고 친구 방글이와 수인을 도와주는 전 여자야구대표 선생까지…. 그들은 꿈을 포기하거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로 등장하며 수인을 통해 희망을 얻는다.

‘야구소녀’는 한국영화아카데미 32기 최윤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속 상황이나 인물에 몰입하게 하는 연출이 특히 돋보인다. 또한 영화를 보는 동안 여자 프로야구단의 상황, 프로야구의 냉혹한 현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하는데 이는 감독의 차분한 연출의 힘이다. 더불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면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인에게 애정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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