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방랑시인’ 에로센코, 부산에서 되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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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중국 베이징에서 찍은 사진으로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에로센코이고 그 오른쪽이 루쉰이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시인 공초 오상순이다. 장정렬 씨 제공

동아시아 연대를 지향한 유라시아 방랑 시인 에로센코의 선집 3권(작은 사진)이 부산에서 번역 출간됐다. 3권은 <빛과 그림자> <좁은 우리> <동화 선녀와 나무꾼>이란 이름이 각각 붙었다. 부산의 에스페란토 번역자 장정렬(59) 씨가 출간한 이 책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먼저 바실리 에로센코(1890~1952)의 아시아 활동 반경에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인 에로센코는 시와 동화를 썼던 ‘숨어 있는 진보적인 동아시아인’이었다.

에로센코 선집 3권 부산서 번역·출간

20세기 초반 활동 러시아 맹인 시인
‘동아시아 연대’ 지향 진보적 사상가

일본 침략 비판하고 전쟁 한국민 위로
에스페란토로 쓴 ‘선녀와 나무꾼’ 눈길

21세기 우리는 국민 국가에 묶여 있으나, 그는 20세기 초반에 벌써 국민 국가의 경계를 가로질렀다. 그는 4세 때 홍역으로 실명한 러시아 시인으로 1910~1920년대 동아시아에서 문학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소설가 염상섭, 시인 김동환을 일본에서 만났고 시인 오상순, 공산주의자 박헌영을 중국에서 만났다. 이상의 소설에서는 ‘에로센코를 읽어도 좋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상에게 에로센코는 ‘좁고 답답한 식민지 조선’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적 지평선에 놓인 인물이었다.

그런 에로센코는 식민지 조선에 오지는 않았다. 대신 일본의 조선 침략을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일본은 불행한 한국을 산산이 찢어놓았다…우리는 정의와 동정 그리고 호조가 없어지면 인류가 멸망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에로센코는 1914~1916년, 1919~1921년 일본에 머물며 진보적 인사와 교류했고 1916~1919년 태국 미얀마 인도에 갔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서 추방된 뒤인 1921~1923년엔 중국에 체류하며 중국 문학의 선구자 루쉰과 바진(巴金), 신문화운동의 기수 후스(胡適) 등과 돈독하게 교류했다. 그는 문학과 진보적 활동으로 20세기 초반부 동아시아를 훤칠하게 가로질렀다. 장정렬 씨는 “동아시아 연대를 지향하는 이런 광폭은 지금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에 번역한 에로센코 선집의 저본은, 일본의 미네 요시다카 씨가 1981년에 낸 에로센코 작품집이다. 요시다카 씨의 50년에 걸친 열정적인 에로센코 탐구는 2007년 <부산일보> ‘접속 지구촌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요시다카 씨는 “에로센코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는데 그의 삶 자체가 작품”이라고 했다.

이번 번역본은 요시다카 씨의 작품집 6권 모두를 3권으로 축약해 출간했다. 그리고 1930년 한국에 소개된 에로센코 작품 ‘버마의 전설’을 윤문해 부록으로 실었다. 1921~2007년 20차례 국내 소개된 에로센코 서지 목록도 조사해 덧붙였다.

에로센코는 1952년 11월 62세 일기로 고향(우크라이나)에서 세상을 떴다. 그는 죽기 직전인 1952년 4월에 한국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에스페란토로 썼다. 앞부분은 이렇다. ‘한국을 아침의 나라라고 한다… 이 나라 풍광은 매력적이라서 사람들을 꿈꾸게 만든다.’

그때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장정렬 씨는 “위대한 시인 에로센코는 식민 지배에서 겨우 해방됐음에도 불구하고 또 세계사적인 전쟁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한반도와 한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동화를 썼을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병상에서 에로센코가 생각했던 나라는, 그가 살았던 일본도 중국도 아니었다. ‘선녀와 나무꾼’의 나라, 슬픈 한국이었다. 그가 세계와 소통하면서 사람들 마음에 심고자 했던 것은 인류애였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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