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선언·제재 완화… 국민정서 반하는 여권發 유화 제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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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열린 원내대표단·상임위간사단 긴급 연석회의에서 발언하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왼쪽에서 두 번째) 원내대표. 김종호 기자 kimjh@

더불어민주당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25일 ‘한반도 종전 선언’을 당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북 제재 완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성급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한반도 종전 선언은 다시 추진돼야 한다”며 “긴장 대치 상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선 종전 선언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는 잘한 결정”이라며 “남북 모두 코로나19로 어려운 바로 지금이 협력을 강화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김태년 “종전선언 다시 추진돼야”
송영길 “유엔 제재완화 요청할 것”
‘한·미워킹’ 남북관계 족쇄 지적도

“연락사무소 폭파 며칠 지났다고”
장기적·상식적 대북 정책 필요성

같은 당 김경협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는 종전 선언”이라며 “국회에 발의돼 있는 종전 선언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이제 평화체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자’고 하는 메시지가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앞서 김 의원을 포함한 친여 의원 173명은 지난 15일 ‘한반도 종전 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으나, 다음 날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당내에서도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이 갑작스레 군사행동을 보류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가자 ‘상응 조치’ 차원에서 종전 선언 카드 등을 다시 꺼내들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미국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대북 제재 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25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국이 반대한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며 식료품과 의약품 지원, 한국인 관광객의 중국 등 제3국 여행사를 통한 방북 허용 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한·미 간 북핵 문제 협의 창구인 한미워킹그룹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의 족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날 ‘북핵 문제 발생, 원인과 해법’ 강연에서 “외교부가 한미워킹그룹이 생겼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때 ‘족쇄를 찼구나’ 생각했다”며 “거기 걸려 헤어나지 못한 결과 북한이 이런 패악질을 부리기까지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워킹그룹 틀 밖에서 족쇄를 풀고 핵문제를 풀기 위해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종전 선언과 제재 완화는 북한 비핵화 상응 조치로 거론됐던 카드라는 점에서 북한 도발에 따른 대응책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보수 야권에서는 종전 선언이 주한미군철수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 연락사무소 폭파 등 비상식적 조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비등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앞서나간다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 대통령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하고, 170억 원이 들어간 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는데도 북한이 요구하는 바를 빨리 들어 주자고 서두르는 것은 국민 정서와 크게 배치된다”며 “장기적이고, 무엇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위 위원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의 도발에 우리가 ‘북이 화낼만하다’며 북한이 아닌 우리 탓을 하면서 길들여지다가 이젠 김정은의 극적 조치로 더욱 더 북에게 잘해야 한다고 결심한다”며 여권이 북한의 가스라이팅(심리적 길들이기) 수법에 길들여지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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