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26.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12 Songs From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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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는 1955년 태어난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클래식 작곡가로서 뿐 아니라 팝과 록 등 대중음악의 영역까지 활동을 넓혀 왔습니다.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게 된 계기는 TV 미니시리즈용 ‘닥터 지바고’ 등 여러 영화·드라마 음악을 통해서였지요.

에이나우디는 지난 4월 12곡이 수록된 앨범 ‘12 Songs From Home’을 선보였습니다. 이탈리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돼 봉쇄조치가 취해졌을 때 자신의 집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로 녹음한 앨범입니다. 에이나우디는 가족이 잠든 시간을 기다려 아이폰을 이용해 이 앨범을 녹음했는데요, 아주 고요하고 조용한 12개의 트랙은 그가 이미 발표한 앨범의 곡들이지만 솔로 피아노의 핸드폰 녹음 때문인지 전혀 다른 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실 이 앨범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만한 최소한의 녹음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을까 우려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녹음과 장소로의 유행과 변화가 계속돼 오고 있지만 ‘단지 아이폰을 통한 녹음’으로 앨범 발매라니! 앨범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를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앨범을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음악이란 어떻게 보면 그 아티스트의 삶이자 기록, 그리고 일상의 흔적일 텐데요. 누군가에게 음악은 소리를 담아내 듣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의미보다, 소리 자체가 하나의 기록으로 사진첩처럼 다가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누군가라는 존재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어쩌면 이 앨범을 통해 우리는 음악이 주는 새로운 의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앨범은 스피커가 아닌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해서 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스피커로 듣는 것과 감정적으로 무척이나 차이가 나거든요. 이 문구를 앨범에 표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내 귓가에서 바로 들리는 아주 작은 볼륨의 피아노 소리는 에이나우디가 이 음악을 녹음했던 공간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리게 합니다. 그날 밤의 온도와 습도, 하늘과 구름의 생김새, 그 도시의 냄새 등이 듣는 이의 온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듯하지요. 아주 연약하고 낡은 소리이지만 그 소리가 주는 힘은 무척 강합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나와 내 주위 사람에 관한 많은 기록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말이지요. 이 앨범은 지금 시대의 삶을 기록하려는 한 피아니스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음악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전달할까에 대한 열망과 함께 말이지요. 창작가에게, 그리고 듣는 이에게 지금의 음악은 서로에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앨범입니다.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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