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이는 26년 내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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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꾼’ 학규 역 이봉근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에서 열연하고 있는 배우 이봉근. 리틀빅픽처스 제공

소리꾼이 내뱉는 애끓는 한(恨)의 정서가 가슴을 파고든다. 어두운 극장 아래 이봉근(37)의 소리는 단숨에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저 목 놓아 부를 뿐인데 심원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을 통해서다. 스크린 데뷔작으로 관객 만날 준비에 한창인 이봉근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봉근이 그린 ‘소리꾼’ 학규는 꽤 사실적이다. 눈빛과 표정뿐 아니라 우리의 소리를 걸쭉하게 뽑아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봉근은 수많은 무대에서 소리를 해 온 26년 경력의 베테랑 소리꾼이다. 201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이 좋다. 영화 ‘소리꾼’은 국악계 베테랑인 그가 충무로 새내기로 첫발을 떼는 작품. 판소리 ‘심청가’와 ‘춘향가’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라 그의 ‘소리 내공’이 빛을 발한다. 이봉근은 “연극 무대엔 제법 올라 봤지만, 스크린 연기는 처음이었다”며 “오디션 때 벌벌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연기할 때 긴장을 하지 않는 편인데 영화는 처음이라 위축됐어요. 긴장을 풀려고 ‘소리를 먼저 하겠다’고 했는데 ‘연기 먼저 하시라’더라고요.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베테랑 국악인의 영화 데뷔작
납치된 아내 찾아 떠도는 설정
‘심청가’‘춘향가’ 기반한 작품
천민 역할 맞춰 체중 10㎏ 감량



영화는 조선 후기 소리꾼 학규가 납치된 아내를 찾기 위해 눈먼 딸 ‘청’과 함께 조선 팔도를 떠도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본 판소리 서사를 바탕으로 조정래 감독이 천민 인신매매 등의 영화적 살을 붙여 빚어냈다. 이봉근은 “소리를 하면서 판소리의 기원을 고민했던 게 이번 연기에 도움이 됐다”면서 “새로운 도전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도 느꼈다”고 말했다. 당대의 소리꾼을 표현하기 위해 외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단다. 그는 “계급이 천민인데 너무 잘 먹은 것 같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체중을 10kg 정도 줄였다”며 “1년 전과 후를 비교하면 살이 확연히 빠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극의 후반부 학규가 몇 분간 창을 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장 8분간 이어지는 장면에서 이봉근은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건 물론이고 영화의 빈틈까지 메운다. 작품 속 모든 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선보인 그는 “보통 판소리가 최소 3시간 반에서 최장 8시간까지 긴 호흡으로 가기 때문에 어렵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료 배우들을 치켜세운다. “고수 역할의 박철민 선배와 창을 선보인 아역 김하연 씨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북과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 전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걸 해내더라고요. 하연 씨는 재능이 많은 것 같아 소리 제자로 키워 볼 생각이에요.”

이번 작품을 한 뒤 자신의 창(唱)에도 변화가 생겼단다. 극 중 판소리를 기교 대신 정서 전달에 초점을 두고 색다르게 접근한 덕분이다. 그는 “‘소리꾼’ 속 시대는 판소리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아마추어 같이 부르는 게 관건이었다”면서 “판소리의 기본 요소 중 하나가 절제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인데 반대로 하느라 처음엔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최근에 이 방식을 섞어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했는데 관객분들이 평소보다 잘 와닿았다고 하시더라. 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 소리꾼’ 이봉근은 국악의 대중화에 힘써 왔다. 대중·재즈 음악 밴드와 협업 곡을 선보이고 KBS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우승을 거머쥔 게 대표적이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노래에 우리 가락을 넣어 재해석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봉근은 “사회성·풍자성 짙은 판소리는 유행에 민감한 음악이었지만, 지금은 그 기능이 많이 없어졌다”며 “요즘 유행하는 장르를 체득하고 녹여 판소리를 현재화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국악의 무한한 매력을 대중문화와 잘 버무려 다뤄 보고 싶어요. 연기로도 보폭을 넓혀 활동하고 싶어요. 하하.”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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