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의혹이 의혹에 그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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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소설의 첫 부분은 대개 수수께끼로 시작한다. 파국을 암시하는 불길한 조짐을 제시하는가 하면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누구일까’, 혹은 ‘두 남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조성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도 비슷한 수법을 구사한다. 이는 독자나 시청자를 결말까지 붙들어 두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온라인에서 정보가 넘쳐 나고 이용자가 ‘광클릭’ 속도로 빠르게 옮겨 다니는 시대가 되면서 신문도 언젠가부터 이 기법을 배워 써먹고 있다.

우선 기사 제목부터 추리소설처럼 감성적으로 붙인다. 이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제목을 클릭했다가 ‘낚였다’는 탄식을 내뱉는 이용자가 늘어났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흥미롭긴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경쟁적으로 올리는 나쁜 관행에 점차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의혹 제기성 보도는 아직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아예 확인이 불가능한 사실이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흥미 유발 낚시성 기사 제목 많고
가짜뉴스·정파적 왜곡 보도 넘쳐 나
의혹 제기로만 그치는 것도 문제
사실관계 확인·추적 보도 절실해

물론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이거나 마감시간에 쫓기는 상태에서는 문제 제기성 보도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제기한 의혹을 더 파고들거나 검증하는 작업이 뒤따른다면 의혹 제기 보도는 언론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징후일 수 있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단 터뜨리고 보는 기사가 넘쳐 나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해 여름 언론을 도배했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 보도, 최근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의혹과 코로나19 보도 등 관련 사례는 많다. 포털을 검색하면 ‘의혹’은 기사 제목에서 마치 한글의 토씨처럼 남발되는 일상적인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언론이 의혹을 제기한 사안에 대해 후속 보도를 통해 확인하거나 사실을 바로잡는 노력이 따르지 않는 사례가 너무 많다. 상당수 의혹은 미제사건으로 흐지부지 남기도 하고 오보로 판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설혹 거짓으로 밝혀져도 언론사 스스로 정정보도를 하거나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의혹으로 유발된 사회적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간혹 자그마한 정정보도가 나와도 이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의혹 제기 자체가 정국을 정파적으로 갈라놓는 뇌관이 되기도 하고, 당사자에게는 치명타가 된다.

의혹 보도의 폐해는 대개 속보 경쟁 때문에 발생하지만, 때로는 언론사의 정파적 시각이 개입해 사안을 거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 중에는 전화 한 통이나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않은 악의적 보도로 사회 갈등을 격화시키고 언론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는 사례는 넘쳐 난다.

팩트 확인은 언론 보도에서 알파이자 오메가다. 의혹이라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팩트를 확인하고, 그 팩트의 의미를 바꿔 놓을 만한 또 다른 팩트나 맥락은 없는지 거듭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본령이다. 이를 게을리하면서 무책임한 의혹 제기를 언론의 공적 책무로 포장하고, 정파적 사실 왜곡을 여론의 다양성으로 둘러대는 것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극이나 다름없다.

현재 뉴스 수용자가 냉정하게 평가하는 언론의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렇다 보니 최근 이슈로 부각한 가짜뉴스 문제에서도 일부 온라인 군소매체나 개인이 아니라, 유력 언론사가 주범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가짜뉴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허위나 조작 보도를 하거나, 가짜뉴스를 만든 언론사에 대해 거액의 피해배상을 물리자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언론 비평지 <미디어오늘>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1%가 제도 도입에 찬성의견을 밝혔다는 점이다.

물론 보도 내용을 법으로 재단해 처벌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와 상충하는 측면도 있어 실제로 제도화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나오고 있고, 국민들이 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은 현재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어졌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혹 제기를 통한 궁금증 유발은 관심을 끄는 데 편리하긴 하지만, 픽션인 소설과 드라마에 그쳐야 한다. 언론 보도는 흥미 유발에서 시작하더라도 엄격한 팩트를 기반으로 결말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지금처럼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로 기자가 싸구려 작가로 전락하는 일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백 보를 양보해 추리물식의 흥미진진한 소설적 기법도 기사 쓰기의 일부라고 치자. 아무리 저급한 소설이라도 결말 없는 작품이 세상에 어디 있나? 일단 의혹을 제기한 기사는 끝까지 추적해 결말을 확인해야 하며, 반전이든 뻔한 결말이든 독자가 보기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온라인 시대에도 언론이 살아남는 비법 아닌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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