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서울 집중 두고는 집값 못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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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 신라대 무역경제학부 교수

지난 연말 고강도의 주택 투기억제책이 나오면서 잠시 주춤하던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근래 들어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투기 조짐에 신속하게 대책들을 쏟아내 온 정부는 지난 17일 이제까지 나온 정책을 총망라한 초고강도 대응을 내놓고 투기 세력과의 한판 대결을 다짐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벌써 22번째의 정책 발표로,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읽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의지의 강도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22번째나 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정책의 그물이 촘촘해졌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정책들이 시장에서 멀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문 정부 들어 22번째 부동산 정책
촘촘해졌지만 시장에선 더 멀어져

투기 억제 적용 지역 확대했을 뿐
국토부·청와대 인식 여전히 안이

수도권 집값 잡는 각종 정책보다
균형발전에 투입하는 게 효과적



실제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근저에 놓여 있는 생각은 집값은 투기꾼들 때문에 오르는 것으로, 이들을 잡으면 집값은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투기꾼들이 하는 행태를 모두 나열하고 그 행태를 일일이 규제하는 섬세한 대책을 만들어 투기를 잡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투기꾼과 비투기꾼으로 쉽게 단순화되지는 않는다. 실제 투기를 하지 않더라도 집을 장만하거나 넓히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는 없을 수 없는 것이며, 이런 것들이 모두 시장에 영향을 준다. 쉽게 말해 전문적인 투기꾼도 있지만 실수요자는 물론 선량한 투자자들도 적지가 않은 것이다.

주식시장을 보면 더 잘 알 수가 있다. 하루의 주식시세는 주식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지만 시장에는 그날 거래에 참여한 사람뿐만 아니라, 참여할까 말까를 망설인 더 많은 관망자가 뒤에 존재한다. 이들 관망자의 보이지 않는 생각과 움직임도 주식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인 요인이다.

그래서 정책은 투기꾼도 잡아야 하지만 비투기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투기꾼을 섬세하게 규제하면 될 것이라는 정책들이 흔히 실패하는 이면에는 선량한 비투기꾼들의 예상하지 못한 분노와 비협조가 있다. 그래서 규제의 그물을 최소화하고 시장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이번의 6·17 부동산 대책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투기억제책이 적용되는 지역을 확대한 점이다.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확대한 것인데, 서울 집값을 규제하면 다른 곳이 오르는 풍선효과를 없애기 위해 주위의 더 넓은 지역까지 규제의 영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역들이 많이 보던 곳이다.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 지정된 곳은 다름 아닌 광의의 수도권이다. 이것은 역으로 수도권의 집값 문제는 결국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 준다. 투기꾼을 감시하고 잡는 것도 좋지만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정책을 쓰지 않으면 집값은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나 청와대의 인식에 이런 근원적인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6·17 조치를 발표하고 나서 청와대 정책실장은 아직 투기 억제를 위한 카드를 전부 다 쓴 것은 아니며 필요하면 더 강력한 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투기를 잡겠다는 열정은 이해하지만 정책적 마인드로는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쉽고 간결하지만 효율적인 정책이 좋은 것이다.

충청권까지 확대된 범수도권에서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는 집값 잡기가 한창인 이 시점에 부산, 울산 그리고 경남에서는 근년에 들어와 오히려 집값이 내려가고 있다. 경기의 부진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을 당위론적으로 이야기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균형발전론을 얘기하는 것은 지방의 생존을 위한 절박함의 호소이다.

그래서 지방이 한목소리로 2단계 공공기관 이전이라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고,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발의한 것처럼 아예 새로 생기는 공공기관은 지역 입지를 의무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여야를 막론하고 균형발전과 공공기관의 이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의 새롭고 획기적인 균형발전 구상과 2단계 공공기관 이전의 밑그림은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사실 22차례나 발표되었다는 수도권 집값 억제 효과도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강력한 투기 억제 정책이 어디 한두 번 나왔는가.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그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를 균형발전을 위해 투입하는 것이 오히려 투기 억제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균형발전 정책도 투기억제책처럼 번호를 붙여 매달 발표돼 22차례 대책이 나오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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