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여민(與民) 정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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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3대 금기’가 회자한다. 대입과 병역, 그리고 취업 영역에서의 부정 또는 불공정이다. 국민 대부분이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여서 이 세 영역은 항상 국민 이슈가 되곤 한다. 사회의 많은 난제도 이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웬만한 국민은 자신만의 식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누구와 만나더라도 토론이 가능할 정도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로 불리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지금 딱 그렇다. 일자리 자체가 생존 문제인 데다, 정규직 전환은 노동시장 진입을 바라는 청년층에겐 더욱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취준생 분노 폭발시킨 ‘인국공 사태’
우리 사회에 또다시 공정 화두 던져

청와대·정부, 자기 잣대로 일방 집행
수긍할 만한 기준·절차의 공감 없어

시간 걸려도 공동의 원칙 도출해야
국민과 더불어 가야만 정책도 성공



국내 일자리는 1997년 IMF 구제금융과 2008년 금융위기 사태를 거치면서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노동시장 장벽은 더 까다로워졌다. 예전처럼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대기업 등 민간 영역의 취업 기회는 더욱 적어졌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실업자 급증과 기업들의 비용 절감 움직임, 여기다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겹치면서 비정규직은 많이 늘어났다.

민간 영역에서의 기회 축소는 자연스레 취업준비생의 눈을 공공 부문으로 돌리게 했다. 공공 부문이 직업적 안정성과 함께 취업 기회의 공정성도 높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대부분 기업이 아예 채용 공고조차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층이 돌파구로 공기업이나 공무원 등 공공 부문에 더욱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취업 시장 구조인 셈이다.

20~30대의 일자리 갈증은 한계점을 넘어섰다. 이들은 초등생 시설부터 온갖 경쟁에 시달리며 자라온 세대다. 어느 세대보다 경쟁이 몸에 배어 있다. 병역 의무마저 경쟁해야 했던 이들이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취업 장벽 앞에서 느끼는 암울함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인국공 사태가 청년층의 불만 표출의 기폭제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과 노동계는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도 각자 처지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지만, 문제 제기의 큰 흐름은 공정에 대한 공감과 소통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취업준비생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정규화에 대한 납득할 만한 기준과 절차의 투명성과 소통 부재가 꼽힌다. 누구도 비정규직의 정규화 자체를 반대하거나 이들의 처우 개선에 어깃장을 놓는 목소리는 없었다. 비정규직으로만 향하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서도 단호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다만,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 취업준비생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인국공 사태의 발단을 보면 청와대와 정부의 공감과 소통 능력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공식 외부 일정에서 약속한 일이니만큼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성사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그것도 발언 시점에 따라 정규화 대상이 칼로 무 자르듯 갈린다면 누구라도 선뜻 수긍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취임 선서에서 말한 ‘기회와 과정, 결과에서의 공정’에 시비를 걸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공정함이라는 공공의 잣대를 당사자들과의 공감이나 소통 없이, 자신의 잣대와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설정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휘둘러댄다면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지 청와대와 정부는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기회와 과정, 결과에서의 공정은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공동의 잣대로서 준거점이 돼야 한다. 물론 국민 각자의 생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공동 잣대의 원칙에 따라 어긋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수긍하지 못할 당사자는 없을 듯싶다.

또 하나는 가짜 뉴스나 보수 언론의 탓으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연 가짜 뉴스나 보수 언론이 없었다면 이번 사태가 없었을 것인가.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나라 전체를 큰 천으로 다 뒤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몽매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취업준비생들이 이런 말에 더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 것이 이해할 만하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시간은 촉박하다. 그런데 총선 압승으로 정치적 힘은 더 강해졌다. 성과에 대한 조급증이 생길 만도 하다. 그렇더라도 일방통행식은 곤란하다. 이참에 인국공 사태의 의미를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감과 소통이 가장 중요한 정책의 지름길임을 되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여민(與民) 정부’의 길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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