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62. 디그노크라시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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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각 팀의 최고참 선수들이 동반 주춤하며 에이징커브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이대호(롯데)와 김태균(한화), 정근우(이상 38·한화), 박용택(41·이상 LG) 등이 에이징커브에 반격을 시도한다.’

기사를 보다가, ‘‘에이징 커브’가 뭐지?’ 했다. 이 난생처음 본 말로 검색해 보니 이런 기사들이 나온다.

‘14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김태균이 지난해 6홈런에 그치는 등 1982년생 선수들은 지난해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 구간)의 직격탄을 맞으며 대부분 성적이 하락했다.’

‘‘LG의 심장’ 박용택(41)과 ‘국가대표 2루수 출신’ 정근우(38). 그들을 향한 에이징 커브(나이가 들면서 불가피하게 신체 기능이 저하돼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것)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류중일 감독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냐, ‘저하 구간’이냐가 헷갈리기는 하지만, 결국 쉽게 말해 ‘노쇠화’였던 것. 아니, 그런 걸 뭐 저렇게나 어려운 말로 썼나, 싶었다. 괄호를 달아 설명까지 하면서…. 안 읽히는 기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기사는,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기사가 아니다. 그냥 일기나 낙서, 뭐 그런 것이랑 다를 바가 있겠는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정보를 알려 주자는 게 기사의 목적인데, 되레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면….

한데, 어렵게 말하는 습관이 언론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아래는 지난주에 보도된 기사.

“앞으로 모든 교실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온·오프라인수업을 혼합해 운영할 수 있는 블렌디드 러닝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

부산시교육청에서 열린 ‘톡!톡! 포스트 코로나 부산교육’ 주제 토론회에서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 임기 2주년을 맞아 열린 이 토론회에서 김 교육감은 ‘혼합형 학습’이라는 쉬운 말 대신 이런 용어를 썼다.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다. 교수 출신인 김 교육감에게는 쉬운 말일 수 있겠지만, 아마 한국어 사용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모르는 말일 터. 게다가….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이 학력 중심주의의 메리토크라시에 기초해 왔다면 앞으로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는 디그노크라시로 바꿔나가야 한다.”

같은 자리에서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언론 보도는 친절하게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 디그노크라시(존엄주의)’라고 괄호를 달아 설명했지만, 저렇게 부연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말을 써야 했을까. 문득, 같이 사진 찍는 아이들과 맞추려고 무릎을 살짝 구푸려 주던 어떤 사람이, 생각난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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