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이 세상에 공정한 차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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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25일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안전요원 1900명을 정규직 청원경찰로 전환하기로 한 일을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막아달라는 청원에 20만 명이 넘는 동의가 달렸다고 한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소동이다. 처음 논란을 부른 어느 언론의 보도가 가짜 뉴스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대로다. 없는 일도 지어내고 작은 일도 부풀려서 갈등을 조장하려는 일부 언론의 작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달리 이번 일을 두고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청년 세대들 특히 취업준비생들의 분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그 이유를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들 높은 자들이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 자녀나 주변 사람들에게 불공정한 특혜를 주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이번에는 대통령 찬스라는 말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특혜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주어져야 할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정규직이 된 인천공항의 보안요원들은 특혜를 받아 새로 채용된 이들이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해 오던 사람들이다. 다만 그 처지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남의 일자리를 뺏은 것도 아니고, 이들이 정규직이 되었다고 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설마 그 자리의 비정규직들을 자르고 나를 취업시켜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인가? 결코 있어서 안 되는 일이지만 어차피 소모품에 불과한 비정규직이니 마구 자르고 새 사람을 뽑는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비정규직을 자른 그 자리에 나를 정규직으로 뽑아 줄까? 당연히 또 다른 소모품에 불과한 비정규직을 뽑을 터이다. 그러니 취준생들의 처지에서 보면 공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일은 그만큼 내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을 더 높인다. 그러니 다른 누구보다 취준생들이 이번 조치를 두 손 들어 환영해야 옳은데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니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의아한 일이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방침에
취업준비생들 “기회 박탈돼 불공정”
반대한다는 국민청원 20만 명 넘어
 
청년노동자 김용균 죽음에는 분노
비정규직 차별은 당연시하며 방관
공정사회 위해선 약자들 연대해야


물론 청년 세대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요즘처럼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했던 적이 없는 듯싶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언제나 고용 사정이 나아질는지도 막막한 형편이다. 청년들이 느낄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깊이 공감하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노가 당연히 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 사회의 또 다른 약자들에 불과한 내 이웃에 가는 일은 옳지 않다.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에 분노하고, 대학내 청소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에 함께 싸우던 청년들이 왜 유독 이번 일에만 분노하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기초수급 어린이가 돈가스를 먹는 모습에 분노한 어느 시민의 글이 올라와 시비가 된 적이 있다. 나중에 식당 주인이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다. 기초수급을 받는 어린이는 돈가스를 먹어서는 안 되고 라면만 먹어야 하는가?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 자주 논란이 되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피해자다움’이다. 성폭행을 당한 이후에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게 행동했다는 뜻이다. 도대체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마 인터넷에 글을 올린 시민은 그 아이들의 ‘기초수급자답지 않음’에 분노했음직하다. 인천공항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분노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겉으로는 이들을 동정하고 공감하는 듯이 말하면서도 진심으로는 이들에게 ‘비정규직다움’을 강요해 왔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홀연 무서워진다. 내가 다른 사람이 당하는 차별을 방관한다면, 내가 차별받을 때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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