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한의 분권 이야기] 자치분권, 정말 하기 싫지예?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 경상대 교수

민주주의는 증오의 대상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바로 혐오의 대상이며, 하나의 욕된 말이었다. 민주주의의 원래 뜻은 민중의 통치이다. 엘리트 지배자들은 민중의 통치하에서는 모든 질서가 파괴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는 뜻의 국민주권과 직결된다. 국민이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는 국민주권의 원리는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에서 불변의 진리로 선포되고 있다.

헌법 전문의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차원에서 자유를 위해 국민 주권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영국의 샹탈 무페 교수는 사적 영역과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주의와 평등과 국민주권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의 긴장은 절대 화해될 수 없으며,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역설’이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민주주의의 역설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강한 민주주의 등의 대안 이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득권 중시 엘리트 지배자
자신들 권한·권력 안 뺏기려
‘껍데기만 자치분권’ 선호

주민이 분권 가치 절감해
소매를 걷고 함께 일어서야
완전한 주권 되찾을 수 있어



우리 현대사를 보면 자치분권도 민주주의만큼이나 증오의 대상이다. 아니 자치분권을 아예 싫어해서 시행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치’는 말 그대로 ‘스스로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읍·면·동의 마을 공동체를 스스로 다스리는 주민주권의 실현이 자치인 것이다. ‘분권’은 중앙정부는 권력과 권한을 지방정부에, 지방정부는 그 권력과 권한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자치분권은 주민주권이라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엘리트 지배자들이 증오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자치분권을 실행하는 원칙과 원리를 법제화한 것이 ‘지방자치법’이다. 지방자치법은 71년 전인 1949년 7월 4일 최초로 제정되었다. 이 법의 제1조 목적은 ‘지방의 행정을 국가의 감독하에 지방주민의 자치로 행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을 기함’이었다. 71년 전에 ‘주민자치’에 의한 지방행정을 명문화하였던 것이다. 이 법은 또한 시·읍·면에는 주민에 의한 지방의회를 두었고, 시·읍·면장은 지방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시·읍·면·구의 하부행정 기관인 동·리장은 임기 2년으로 주민이 직접 선거로 뽑았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는 ‘주민자치’ 정신을 말살하고, 지방의회와 동·리장의 주민 선거는 해체시키고 말았다. 1991년 이후 지방의회는 부활하였지만, 주민자치 정신과 동·리장의 주민 선거는 21세기인 현재에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는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되어, 32년 만에 전부 개정하는 정부 재발의 지방자치법안에도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 정신과 동·리장의 주민 선거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지금 71년 전보다 훨씬 못한 수준의 자치분권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을 개정하는 국회의원들과 법을 발의할 수 있는 정부 관료들이 군사 쿠데타 세력처럼 자치분권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71년 전에 시행하였던 것을 지금 당장이라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자치분권을 싫어하는 예는 또 있다. 지방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예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 제도가 도입될 때, 지방의원들은 자신들의 고유 권한인 예산 심의를 주민들이 침해한다고 극렬히 반대하였다. 2002년 광주시 북구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후, 9년이 지난 2011년에야 법이 개정되어 이 제도가 전국으로 확대 실시 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자치경찰의 전면 시행은 김대중 정부 이후 현 문재인 정부까지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자치경찰의 시행을 국정 과제로 추진하였지만 개정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였고, 21대 국회의 법안 통과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주민자치회도 증오의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마을의 다양한 문제를 직접 발굴 논의하여,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읍·면·동 단위의 주민 자치조직이다. 지난 1월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입법 예고 기간 중 152개의 의견이 있었는데, 모두가 반대의견이었다. ‘관변 조직 하나 더 만들어서 혈세로 배 채워주려 한다’라는 것이 핵심적인 반대 이유였다. 엘리트 지배자들은 무늬만 자치분권을 좋아하고, 완전한 자치분권은 싫어한다. 자신들의 권한과 권력을 주민과 함께 나누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껍데기만 자치분권’을 좋아한다. 완전한 자치분권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이 자치분권을 정말 좋아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