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노숙인 등 ‘취약계층 돌봄’ 공공성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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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던지는 질문] (중) 약한 고리 되짚기

코로나19로 올 2월 24일부터 휴관 권고 상태인 복지관들은 비대면이나 방문 서비스를 시도하면서 현장에서 답을 찾아나가고 있다. 올 3월 부산시 북구 부산뇌병변복지관에서 직원들이 유튜브채널 ‘오뚜기 TV’를 방송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부산뇌병변복지관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최근 인원을 분산하는 조건으로 재개했다. 3개월 만에 센터를 다시 가기 전날 밤, A(22) 씨는 한 시간마다 일어나 엄마에게 “내일 복지관 가는 날 맞지?” 하고 묻고 또 물었다.

부산역 노숙인 지원 활동에 나선 사회복지사 B 씨는 대구에서 왔다는 노숙인이 코로나19 의심증상을 보이자 함께 선별진료소로 갔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B 씨는 ‘자가’가 없는 노숙인과 함께 승합차에서 밤을 지새웠다.

2월 말부터 복지시설 올 스톱
감염보다 더 충격적인 돌봄 공백
현장중심 재난 대응 매뉴얼 시급
안전권 보호 민관협의체 구성해야

■복지관이 멈추니 보이는 것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월 24일부터 모든 복지시설의 휴관을 권고했다. 휴관 기간은 세 차례 연장 끝에 4월부터는 무기한이 됐다. 노인, 장애인, 노숙인 등 이용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나마 그들을 지지하던 사회적 관계망도 함께 멈췄다.

“최근 복지관에 오시던 기초수급자 어르신 두 분이 돌아가셨다. 평소라면 병원에서 지병 치료도 받고 경로식당에서 말벗도 만났을 텐데 집에서 TV를 보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 코로나19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류승일 학장종합사회복지관장은 “대면으로, 서로 모여서 진행되던 기존 활동 대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함께 가정을 방문해 우울증 검사와 상담을 했다. 방역 장비를 빌려 위생에 취약한 가정을 소독하기도 하고, 가가호호 도시락 배달도 했다.

부산뇌병변복지관은 거동이 힘든 장애인들을 만나기 위해 일찌감치 유튜브로 갔다. 안부 묻기 퀴즈, 전화 노래방, 안전수칙 캠페인 등 다양한 제작 영상에 생방송 접속자는 50~80명, 최대 조회수는 2000회를 넘겼다. 일대일 화상회의 서비스 줌으로 이용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돌봄의 공백은 돌봄 노동과 돌봄 노동자의 취약성도 드러냈다. 특히 보건업의 대부분(76.7%)을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는 실직 첫 줄에 서는 것과 동시에 가정의 몫으로 돌아온 돌봄도 떠안아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여성계가 돌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인정을 촉구하는 이유다.



■사회적 돌봄의 현장 중심 매뉴얼을

정부도 부산시도 선뜻 재개관을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섰다.

부산사회복지관협회는 코로나 시대에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와 복지관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TF팀을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복지관의 공간 설계부터 프로그램 전면 개편까지 만만찮은 과제들이 포함돼 있다. 지역주민 2000명과 민·관 관계자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부산뇌병변복지관을 비롯한 부산의 장애인복지관들은 보호자들이 직접 보건복지부에 전화해 꾸준히 건의한 결과 지난달 22일부터 일대일 치료와 주간보호센터를 부분적으로 재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4일에야 처음으로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내놓았다.

김영종 경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돌봄 영역에서 공공성과 함께 지역화, 분권화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사적인 자산이 없는 취약계층에게 공적인 돌봄의 공백은 감염의 공포보다 더 큰 충격일 수 있다”면서 “바우처 형태 시장계약이나 관료제의 하달식 매뉴얼에서 벗어나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부산시인권위원회도 부산시가 시민사회와 함께 재난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노숙인, 이주민 등 재난약자의 안전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인권전담기구가 참여하는 상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첫 과제로 재난 상황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귀순 부산시인권위원장은 “지금의 재난 대응 체계는 기존 시스템 밖에 있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여전히 살피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안전하지 않다면 우리 모두가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사회 전체가 정확히 인식하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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