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신도시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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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사람에게나 사물에나 한계라는 것이 있다. 내구연한이라고도 하지만 자칫 사람에게는 무엄하고 실례되는 말이라서 수명이란 말이 더 적합해 보인다. 그러면 사물에도 사람과 같이 생명이 부여된다.

건축의 수명은 좀 더 다양하게 판단돼 왔다. 소멸 이후에도 기억이나 정신으로 남기도 했을뿐더러,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쳐 형태가 보존되고 기능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과학이 점점 내구성이 좋은 재료를 개발하고 있으니 물리적 수명 연장은 더욱더 긍정적이다. 만든 사람은 가도 건축은 남을 공산이 큰 것이니, 건축의 수명은 사람보다 길다.

20여 년된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한 달 걸려 일상서 불편함 야기
비상용 엘리베이터 필요성 절감
 
집단으로 생산된 신도시 건축들
창호, 인테리어 등 수시로 변화
욕망과 조급증 가세 수명 더 단축

하지만 현대 건축의 수명은 예상과 달리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른바 건축의 사회적인 수명이란 것으로, 사용자의 갈망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는 의미이다. 변화의 속도는 의상 패션의 유행 속도와 맞먹을 정도이다. 그래서 건축의 주변에는 수시로 변화가 일어난다. 외관, 인테리어, 조명 간판, 심지어 사용자까지도 늘 바뀌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건축의 파괴는 다반사가 되었고, 대들보에 상량문을 걸어 집이 영구히 보존되기를 갈망하던 시대의 논리는 이미 무용하다. 덕분에 도시는 신도시란 이름으로 새 건축의 수를 양껏 불렸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흘렀다. 다를 바 없이 신도시의 건물들 또한 사회적 갈등 속에 놓이게 되었다. 집단으로 건축된 신도시 건축의 수명 단축 문제는 건축가인 나를 특히 우울하게 한다. 심각한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생산되었던 것들이 일시적으로 한계에 다다르는 상황에 대한 예측이다. 내가 사는 이 지역도 얼마 전까지 빛나는 신시가지였으나 지금은 영락없이 구시가지가 되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끝이 없다. 창호를 교체하는 사람들이 늘고, “인테리어 공사 중이니 양해 바랍니다.”라는 안내장이 수시로 붙는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큰 문제가 생겼다. 20여 년을 굴리니 엘리베이터의 기능이 한계에 달했나 보다. 건축구조물 안에 장착된 큰 기계라 교체 작업이 쉽지 않고 적어도 한 달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입주민들이 난리가 났다. 한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뿐이라서 이웃 라인 통로를 잠시 이용할 처지도 못 되니 난감하다. 30층에 가까운 고층에 사는 노인과 어린이들에게는 더욱더 큰일이다. 혹 장애인이라도 계신다면 어쩔 것인지? 관리실은 소극적 지침을 주고 딴청이고, 이웃은 기회에 체력 보강이라도 하라고 농을 던지지만, 당사자는 예삿일이 아니다. 음식, 쓰레기 처리, 배달, 출퇴근, 우편물…. 삶의 절반이 동결될 처지에 놓였다.

코로나 사태 이후 또 집에 갇힌 나는, 수시로 창밖을 보며 비상용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고층 건물에 사는 취약함에 몸을 떤다. 눈을 돌리니 사방 천지에 이 아파트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의 아파트들이다. 신도시란 이름으로 거의 동시에 지어졌으니 수명이 같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아파트와 같은 문제에 다다를 것은 보나 마나다. 그리고 얼마가 더 지나면 행정가와 건축가들은 이 거대한 구역의 동시다발적 소멸을 논할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욕망과 조급증이 가세하여 점점 더 그 기간을 단축하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다.

출근길 하강에서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골목과 단층주택을 뛰어다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고, 오랜 수명의 낡은 건축을 다시 보게 될 것이며,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내 직업의 허점을 반성할 것이다. 신축과 신도시는 언제까지 희망과 발전의 산물이 될 터인지? 퇴근길에는 나는 신도시의 30층을 또 무겁게 올라야 한다.

아~ 도대체 신(新)이라는 접두어의 수명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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