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인국공’과 K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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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국제공항이 전국적으로 ‘뜨거운 감자’다. 보안 검색 비정규직 1900여 명을 공사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방침이 알려지자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2일까지 27만여 명이 동의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이념과 세대 같은 기존의 틀만으로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이슈가 갖는 독특한 성격이다.

공기업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꿈의 직장’에 들어가려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고, 공정 경쟁 룰을 어겼다는 것이 청와대 청원의 요지다. 국정농단 발견의 실마리였던 정유라 입시,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등의 사안에서 청년 세대의 공분을 일으켰던 논거도 ‘공정’이었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은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기간제와 파견제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면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직장이 급격히 줄었다. 공무원 시험에 그렇게 많은 청년이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바야흐로 정규직은 이 시대 청년들이 선망하는 계급이 되었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취업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취준생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일각에서는 오로지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 경쟁과 기회 평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저한 근로조건 격차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는다. ‘을’들끼리 싸울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 나가자는 것이다.

23년 전 구제금융 사태가 한국인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킨 각자도생의 길은 아직도, 아니 오히려 더 갈수록 또렷해지는 삶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갑자기 지구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은 맹목적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보다는 우리에게 내재한 조화와 질서, 연대와 협력의 힘을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바이러스든, 기후 변화든, 계급 전쟁이든 우리 후세가 살아갈 세상의 불확실성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할 노동은 일자리와 노동의 의미부터 근원적으로 바꿀 것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영역에서 성공을 일군 요소를 적용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K방역’ 같은 실무 영역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조화와 질서, 연대와 협력의 길을 복원해 나간다면 한국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새 기준을 제시하는 유일한 나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호진 해양수산부장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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