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로 vs 재산권’ 갈등 ‘등산로가 무슨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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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에 가로막힌 백양산 길

부산진구 당감동 부산국제고 옆에 있는 백양산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이곳 소유주는 사유지 보호를 이유로 펜스를 설치해 등산객의 출입을 통제했다. 정상채 시의원 제공

“부산진구 주민의 등산로를 돌려 달라!” “사유 재산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백양산 등산로 폐쇄를 두고 지주와 주민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3년 가까이 잡음을 일으켜 왔던 이 문제를 놓고 급기야 시의원이 지주를 관할 경찰서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일 부산시의회와 부산진구에 따르면 정상채 시의원(부산진구2·더불어민주당)은 부산진구 당감동 동일스위트아파트 일대 등산로를 막은 임야 소유주 A 씨를 부산진경찰서에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토지 소유권자라 할지라도 사적인 영리를 목적으로 수십 년간 사용하던 등산로를 폐쇄하는 것은 형법 제185조 위반과 토지 공개념의 취지를 일탈한 범법 행위라는 게 고발장의 주된 내용이다.

지주
“재산권 보호 위해 폐쇄 불가피
구청에 매수 요청 협상 결렬”

주민
“수십 년 등산로 알면서 매수
교통방해 혐의로 경찰 고발”


문제가 된 임야는 개발행위가 금지된 자연녹지다. A 씨는 주민들이 이전부터 백양산을 오르는 통행로로 사용되어 왔던 이 땅을 2015년 공매로 불하받았다. 그러다 2017년부터 ‘사유지 보호’를 이유로 등산로 입구에 펜스를 설치하고 자물쇠를 걸어두면서 민원이 시작됐다. 백양로 등산로로 애용되던 이 임야는 이후 개방과 폐쇄를 거듭했고, A 씨와 주민 간의 갈등도 이어져 왔다.

부산진구청은 A 씨와 여러 차례 협의를 시도하였으나 협상이 결렬됐다. A 씨는 본인 소유의 임야를 부산진구청에서 매수하거나 다른 토지로 대토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부산진구청은 ‘지목이 임야에 해당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부당하다’며 이를 거절했다.

정 의원은 A 씨 소유 이전부터 있던 등산로는 그대로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A 씨가 임야를 매입할 당시 등산로의 존재를 알았고, 이 등산로에 따라 땅값도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민원을 받고 현장에 가 보니 소유주가 등산로 입구에 펜스를 쳐 주민들이 아예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진구가 우회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산골짜기로 둘러가야 해 주민 불편이 예상된다. 소유주는 2017년 임야 매입 당시 통행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므로 통행로는 관행대로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임야 소유자인 A 씨는 ‘재산권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내가 그 땅을 산 지 5년이 됐는데 그동안 배드민턴 치러 오는 사람, 등산 오는 사람 다 놔뒀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구청이 이 근방 내 땅에 전봇대를 말도 없이 박은 적도 있다. 자꾸 등산로를 달라고 하길래 ‘차라리 등산로를 사라’고 했는데 그것도 돈이 없어서 안 된단다. 그럼 그저 공짜로 쓰겠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내가 협상을 하지 말자고 했다. 구청에서 대체 등산로를 낸다니 차라리 잘됐다”고 밝혔다.

부산진구청은 A 씨의 해당 임야를 다 사 줄 수도 없고, 이런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고 못 박았다. A 씨의 임야를 대신해 당감동 동일스위트아파트 110동 뒤 계곡 위로 목교 27m를 개설해 오는 10일 대체 등산로로 개방할 예정이다. 부산진구 공원녹지과 측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땅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벽 쪽으로 붙은 길만 내주면 펜스를 쳐서 임야 침입을 못하게 하겠다’고 제의를 했지만 결국 협의가 안 됐다. 비록 돌아가는 모양새가 됐지만 주민들에게 대체 등산로를 이용하라고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상국·이상배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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