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기수 첫 노조 설립 등 경마제도 개선 결실 맺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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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것

고 문중원 기수는 지난해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숙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서에는 “한국마사회에 밉보이면 마방을 받기 어렵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1일 경찰은 마방 배정 심사에서 불공정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가 세상을 등진 지 216일 만이다.

문 기수는 A4 용지 세 장짜리 유서를 통해 승부 조작과 부당한 지시 등 경마 현장의 각종 부조리를 언급했다. 특히 조교사 개업을 결정하는 ‘마방 배정 심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내용이 절반을 넘겼다. 마사회 간부들과의 친분에 따라 마방을 배정한다는 증언이었다. 해외에서 선진 경마를 배운 뒤 힘겹게 조교사 면허를 딴 그는 마방을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는 말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마방 배정 심사 불공정 확인
마사회, 재발방지 방안 합의

문 기수 유족과 시민대책위 등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진상 규명과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문 기수 이전에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6명이 숨지며 내부 부조리 등을 규탄했지만, 큰 변화 없이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방 배정 심사의 구조적 문제 등이 드러나면서 추모 열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김해 한 장례식장에 안치된 그의 주검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로 옮겨졌다. 정부서울청사 앞 거리에 시민분향소를 꾸렸고, 그다음 날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유족과 시민대책위 등은 분향소에 머물렀고, 헛상여 행진과 오체투지 등을 이어갔다.

올해 1월 20일에는 문 기수 동료들도 용기를 냈다. 전국 최초로 부산경남 경마기수들이 노조 설립을 신고했다. 앞서 문 기수가 마방 배정 심사에서 외부위원 합격점을 받았지만, 한국마사회 간부로 구성된 내부위원에게는 낮은 점수를 받은 채점표도 공개됐다. 해당 심사가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경마 산업 종사자들의 지적도 나왔다. 구조적인 문제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 셈이다.

결국 한국마사회는 조교사 개업 심사 등 각종 경마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 3월 6일 한국마사회와 민주노총은 부경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서를 작성했다. 마방 배정 심사에 외부위원 확충과 심사 참관 등이 포함됐고, 부가순위상금 공제율 적용·재해위로기금 증액·기승계약서 표준안에 따른 계약 권장 등 처우 개선 방안도 담겼다. 다음 날인 7일 가까스로 문 기수 장례가 치러졌다. 그가 숨진 지 100일 만이었다.

문 기수가 잠든 뒤에도 변화는 계속됐다. 올해 5월 21일 오랜 심사 끝에 부산경남 경마기수 노조 설립이 인가받았다. 이제 기수들도 부당한 대우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셈이다.

지난 1일에는 마방 배정 심사가 친분에 따라 좌우된다는 유서 내용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은 마방 배정 심사 과정에서 특혜를 주고받은 혐의(업무 방해)로 한국마사회 간부 A 씨와 조교사 2명 등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A 씨 등 마사회 간부와 조교사 등 4명에 대해 명절 선물 등을 주고받은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로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이우영·박혜랑 기자 ver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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