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헤매는 유동성 자금 사상 첫 3000조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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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풀린 돈(유동성)이 사상 처음 30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장기 균형 수준과 비교해 8% 넘게 많은 규모다. 이렇게 넘쳐 나는 유동성이 의도했던 투자와 소비보다는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려 가격을 밀어 올리자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광의 통화량(M2)은 3018조 6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3000조 원을 넘어섰다. M2에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외 MMF(머니마켓펀드)·2년 미만 정기 예적금·수익증권·CD(양도성예금증서)·RP(환매조건부채권)·2년 미만 금융채·2년 미만 금전신탁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4월 한 달만 34조 원 증가
원화 대출액 1208조 달해
은행 신용대출 역대급 증가
소비 대신 부동산·주식 몰려

4월 한 달만 34조 원(1.1%) 늘었는데 이는 사실상 현재의 M2 기준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좁은 의미의 통화량(M1) 역시 4월 말(1006조 3000억 원)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악화로 기업과 가계 등이 대출을 통해 자금을 대거 확보하면서 시중 통화량이 크게 늘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실제 이날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6월 말 기준 원화대출액은 총 1208조 9229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8조 8678억 원(6.04%) 늘었다. 이들 은행 모두 각자 제시했던 연간 대출 성장 목표치를 상반기에 대부분 채운 상태다.

연초 코로나19로 대기업·중소기업 등 기업대출이 크게 늘었고, 가계대출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취약계층의 생계자금뿐만 아니라 고신용자의 부동산·주식 투자 목적으로 추정되는 대출까지 겹쳐 증가세를 이어 갔다.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46조 1819억 원을 기록, 지난해 말 27조 3937억 원에 비해 약 69%가 늘었다.

특히 지난달에는 이들 은행에서 신용대출이 이례적으로 3조 원 가까이 증가하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출 규제로 결국 주택담보대출(주택대출)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 간 ‘풍선효과’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 세를 보이고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대출 과속은 건전성 우려를 부른다. 1분기 기준 국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4.72%로 전분기보다 0.54%포인트(P) 떨어졌다. 5월 연체율도 전달보다 0.02%P씩 상승했으며, 코로나19 여파는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건전성 관리에 나설 방침이지만, 정부·기업 등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연초 코로나19 충격에 당면한 기업들은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그동안 외면했던 은행 대출을 늘렸고, 정부는 은행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 확대를 주문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을 거둬들이거나 차단하는 것은 ‘비 올 때 우산 뺏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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