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비가 미덕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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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소비 진작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한 ‘대한민국 동행세일’이 온오프라인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는 12일까지 이어질 동행세일은 대기업에서 전통시장, 소상공인까지 모든 경제주체가 참여하는 민관협력의 전국적 할인 행사다. 경제부총리는 물론이고 각 부처 장관까지 라이브커머스에 쇼호스트로 출연해 ‘완판’ 행렬을 자랑한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비는 애국”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를 무기로 광고 중단 압박에 나선 ‘페이스북 보이콧’ 사태는 소비가 미덕인 수준을 넘어서 권력이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글과 가짜뉴스가 담긴 정치홍보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가치소비 시대가 되면서 글로벌 브랜드도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4일 자(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페이스북 광고 중단 운동에 참여한 기업은 750곳을 넘어섰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대책에 나섰지만 광고주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바이러스가 바꿔 놓은 새로운 변화에는 소비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선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다. ‘소비를 해야 기업이 살고 경제가 돌아간다’는 사고 때문일 것이다. 올봄 한국생산성본부가 주최한 CEO포럼 강연에서 ‘소비의 역사를 통해 본 미래 소비 전망’을 발표한 설혜심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소비적인 논쟁, 생산적인 관계라는 대비 속에 투영된 함의처럼 소비는 생산과 비교해 그 의미가 폄하돼 왔다”면서 “한국에선 소비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향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설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국식 대량소비사회 모델에서 탈피하는 탈중심화, 글로컬(Glocal) 움직임이 거셀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도 왠지 씁쓸하다. 사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1897~1962)가 일찍이 제안한 ‘낭비’ 개념도 따지고 보면 과잉 소비를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고 절제를 부르짖지만, 과잉 생산과 소비야말로 인류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라고 했던 것처럼, 지금의 코로나 시대도 그 역설이 통하길 기대하는 건 아닐까. 즉, 사치와 허영이라는 비판도 다른 한편으론 사회를 추동하는 에너지원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역설처럼 말이다. ‘소비는 낭비’라는 생각이 강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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