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호모 헌드레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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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스코트·헬렌 니어링 부부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에서 상류층으로 살다 후미진 시골로 홀연히 떠난다. 그들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은 자급자족으로 해결하고 자연 속 뭇 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을 택했다. 오전엔 노동, 오후엔 독서와 사색으로 꾸려진 일상. 그렇게 보낸 20여 년의 여생은 물질에 물들지 않은 아름다운 마무리의 전범을 보여준다. 마지막 소망은 자신의 삶을 죽을 때까지 통제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100세를 맞던 해, 스코트 니어링이 보여준 태도는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생일 한 달 전부터 서서히 곡기를 끊기 시작해 물만 마시다가 결국 세상을 떴다. 죽음의 시간이 자신의 손을 떠나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맞기 전에 스스로 생사를 조절한 것이다.

오늘날 100세에 대한 관심은 생의 마무리를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활기찬 삶을 이어 가려는 실천 문제로 확장한다. 2009년 유엔은 이미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는 신인류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의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예고한 바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기술의 끊임없는 발달로 인류는 지금 ‘과학 불로초’를 찾아 ‘영생’을 꿈꾸는 전례 없는 낙관론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거대 담론은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백 년 인생’ 시대를 유장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들의 삶이 훨씬 감동적이다. 국내 최고령(만 95세) 피아니스트 제갈삼 전 부산대 교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팔순 음악회, 구순 음악회, 망백 음악회를 거쳐 간단없는 연주 활동을 이어 온 현역 음악가로서의 열정은 오는 11일 최고령 피아노 연주라는 세계 기네스 기록 도전으로 이어진다. 그는 그렇게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순간도 그 열망을 놓친 적 없다는 ‘백순 음악회’도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는다.

100세 피아니스트의 꿈을 떠받치는 것은 꾸준한 연습과 감사의 마음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큰 힘이 돕는 것 같습니다.” 올해 100세를 맞아 <백세일기>라는 책을 펴낸 철학자 김형석 선생도 이런 글을 남겼다.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의 뜻을 나누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인생의 행복한 의무다.’ 지혜와 건강을 잃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며 100년을 사는 존재, 호모 헌드레드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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