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차별 없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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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비교공법학회장

일본 가와사키시가 ‘차별 없는 인권존중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의 주된 내용은 차별 전반을 금지하는 것과 ‘혐오 표현(hate speech)’에 대한 대책이다. 사실 일본에서 혐오 표현 규정을 둔 것이 이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6년 오사카시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헤이트 스피치 대처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했고, 중앙정부 차원의 법률로도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일명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된 바 있다.

가와사키 조례가 특히 주목받게 된 것은 “누구든지 인종, 국적, 민족, 신조,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출신, 장애 및 그 밖의 사유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적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제5조)고 규정하고, 문제된 혐오 표현에 대해 벌칙 규정을 두었다는 점이다. 차별적 언동을 한 자에 대해서는 6개월간의 언동 금지 ‘권고’, 언동 금지 ‘명령’, ‘실명 공표’, 명령 위반자에 대한 최고 50만 엔(약 540만 원)의 벌금 선고가 규정돼 있다.

입법 성과 못 이룬 ‘차별금지법’
17년 전부터 제정 논의만 계속

‘혐오 표현’ 정의 쉽지 않은 문제
규제 필요성 공감해도 방법 이견

편견 불식할 참여의 장 확보하고
피해자 보호·구제 방안 강구돼야


우리는 어떤가. 외모와 관련된 말, 성별에 대한 편견, 출신에 대한 부정이나 비하, 칭찬을 가장한 편견 섞인 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도되는 말들이지만, 그 언동의 대상이 된 우리 이웃이 겪고 있을 아픔에 대해서 침묵했거나 간과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2003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 논의를 시작했던 ‘차별금지법’은 2020년 현재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이르기까지 입법적 결과를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혐오 표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노력, 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 심의 기준으로 차별금지 조항 신설, 다음·카카오·네이버의 온라인 혐오 표현 근절을 위한 대응 방안 마련, 한국기자협회 등의 ‘혐오 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 전국 최초였던 올 3월 경기도의회 의원들의 ‘경기도 혐오 표현 예방 및 대처에 관한 조례안’ 발의,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양형 기준에 특별양형인자로 ‘혐오 또는 증오감’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 포함 등이 그것이다.

혐오 표현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여서, 그동안 논쟁거리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 표현 리포트’에 의하면 혐오 표현이란 성별·장애·종교·나이·출신 지역·인종·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집단에 △모욕·비하·멸시·위협하거나 △차별·폭력의 선전·선동을 통해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말이나 글뿐만 아니라 몸짓, 기호, 그림 등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 그런데 혐오 표현은 개념 정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특정 집단의 속성을 이유로 대상자를 차별·배제·위협하고, 대상자들이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주장 자체를 왜곡함으로써 다양성과 다원성을 본질로 삼는 민주주의 토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적 과제이자 우리 사회공동체의 과제가 된다.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는 학교 구성원이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 제5조 제3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은… 그 자체로 상대방인 개인이나 소수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하므로, 이러한 금지는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긴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해당 조례가 금지하는 차별·혐오 표현은… 인권침해의 결과가 발생하는 표현”이며 “민주주의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는 것으로 민주주의 의사 형성의 보호를 위해서도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혐오 표현 규제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편견을 불식할 수 있는 참여의 장이 확보되어야 하고, 부당한 차별이 시정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며, 피해자 보호와 구제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규제 필요성을 긍정하는 입장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형사처벌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말’을 처벌하기보다는 교육 등을 통한 인식 개선 조치가 우선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들 가운데 다수의 편견으로 인한 배제적 차별을 부당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우리가 진지한 고민과 행동을 시작해야 할 때다. 왜 해야 하는가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회가 아니라 주권자인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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