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에브리싱 체인지] 뉴노멀 시대를 주도하는 청년 인재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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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무언가 있는 것 같아서요.” “재미있잖아요.” 지난주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진행된 북튜버 양성 과정에 온 청년들의 대답이다. 북튜버는 북(Book)과 유튜버(Youtuber)의 결합어다. 서점 주인이나 오래된 책, 작가에 대한 소재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를 말한다.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주 유튜버 크리에이터 양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소멸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책과 그 골목에 엉켜 있는 삶의 애환을 버무려 유튜브에서 핫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옛 영광을 되살리고자 한 것이었다. 적지 않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15명 청춘들의 눈이 무척 빛나 보였다.

청년을 너무 약하게 키웠지 않나 반성
옛 제도 유지하며 뉴노멀은 어불성설
치열한 삶 향한 자기상 갖도록 도와야

지난달 23일은 북미지역 최대 테크 콘퍼런스로 알려진 콜리젼(Collision)이 개최된 날이다. 이번에는 전염병 위기가 주된 화두였다.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앤드루 양은 코로나19로 인해 1600만 개의 일자리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언급했고, 전 시스코 회장인 존 챔버스 JC벤처스 CEO는 내년까지 향후 10년간 포춘 500대 기업의 4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며 변화에 대한 적응성을 강조했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최근 스페이스 X를 앞세워 우주선을 국제 우주정거장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다. 또한 테슬라의 시가 총액이 일본 도요타를 제쳤다며 트위터에 “파티는 시작되었다”는 글귀를 올려 주목을 끌었다. 미국은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나마 계속 뉴노멀의 문명을 주도한다.

공무원 직업을 선호하고 걸핏하면 위로받고 싶어 하는 청춘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면서 취업도 결혼도 포기한다고 하는데 어찌 염려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바로 우리가 청년들을 너무 약하고 의존적으로 키워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를 보면 새로운 제국이나 문명은 파괴적 기술과 혁신적 기풍에 의해 탄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혁신적 기풍은 고사하고 조선시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죽도록 공식을 외우게 하고 서열화시켜 공무원이 되게 한 것은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을 보게 하여 관리로 등용한 것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 조선시대 과거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뉴노멀 시대를 이끌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칫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알다시피 일본은 지난 1990년대까지 세계 100대 기업 중 50개 이상을 보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2019년 현재에는 2개 기업뿐이다. 그 선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약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명제가 경직된 이데올로기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물론 소수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것은 옳다. 공정이나 포용은 격차시대에 주요한 가치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지원, 정서적 공감, 심리 치유가 너무 강조되는 문화가 되면서 사회적 기력이 약화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 국가에 있어서 약자 돌봄의 문화는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약하다. 야망을 가진 기업인을 존경하는 문화와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 미국을 다시 보자. 미국은 4차 산업혁명기에는 ‘딥테크(deep tech)에 미래가 있다’며 파괴적 기술 개발에 몰두한다. 또한 청년들은 일상 생활에 있어서도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큰 죄’라고 여기며 기업가 정신을 내면화하고 있다. 미국이 이 시대의 ‘좋은 국가’인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문명 혁신의 주도자 위치를 보장받는 이유다.

청년들에게는 역시 이렇게 기업가적 성장 뇌를 키워 주는 것이 제일이다. 이번에 북튜버 청년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역시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다. 내공은 이렇게 축적되는 것이다. 다독이고 위로하기보다는 차라리 미지의 뉴노멀 시대를 주도하도록 모험적 청년상을 심어주는 것이 정답이다.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고, 좌표와 인생 과제를 설정하게 하고, 치열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자기상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실패할지라도 또 시도하고 추구하는 정신근육을 저 무의식 깊은 곳까지 넣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지까지 가면 ‘소확행’이라는 찰나적 즐거움을 사탕처럼 빨아먹는 나약함을 이길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에서 싸구려 인정(‘좋아요’)을 받지 못해 상처받는 마음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어느 시점 목표와 사명감이 자신을 이끌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에겐 행복의 비결이며 공동체에겐 지속 가능성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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