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 관광섬 만든다며 “관광객 막겠다”는 거제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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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가 지심도 주민과 이주 협의를 위해 만든 자료. 단전과 도선 운항 중단에 대한 계획이 명시돼 있다. 오른쪽 아래는 지심도 전경. 섬연구소 제공·부산일보DB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군사기지화한 이후 81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경남 거제시 지심도 개발을 놓고 행정과 섬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관광섬 조성을 위해 주민 이주가 불가피하다는 거제시와, 삶의 터전인 섬을 무작정 떠날 순 없다는 주민이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개발 사업이 지연되자 거제시는 이주 방침에 계속 불응할 경우, 관광객 출입을 막고 전기 공급과 여객선 운항마저 중단시키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주민들은 개발을 위해 주민을 겁박하는 치졸한 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박 운영 주민 국립공원법 저촉
주민 “삶의 터전 무작정 못 떠나”
시 “단전·여객선 중단” 강경 카드
개발 사업 지연에 주민·시 갈등



지심도는 거제도 동쪽 해상에 자리 잡은 작은 섬이다. 섬 모양새가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해 지심도(只心島)라 불리게 됐다. 전체 면적은 0.36㎢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 원시 상태가 가장 잘 유지돼 온 동백 숲을 품고 있어 ‘동백섬’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1936년 일본군이 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뒤 병참기지로 사용하다 해방 후 주민들이 돌아와 정착했지만, 정작 소유권은 국방부로 넘어갔다. 이후 국회 청원 등 끈질긴 반환 노력 끝에 2017년 3월 소유권을 돌려받은 거제시는 지심도의 원시림을 그대로 보존·관리해 자연과 생태, 역사와 스토리가 어우러진 명품 테마 관광지로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개발은 지지부진이다. 지심도가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에 위치한 탓에 본격적인 개발을 위해선 섬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거나 상업 행위를 허가받아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서다.

현재 지심도에는 15가구가 터전을 일구고 있다. 대부분 섬 방문객을 상대로 한 민박, 식당 영업을 통해 생계를 잇는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국립공원법에 따라 지심도에선 영업이나 개발행위를 할 수 없다. 당장 이를 양성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1968년 국방부가 섬 전체를 강제 수용하면서 주민들은 토지 사용료를 지불해 왔다. 사실상 임대다. 때문에 집단 이주 시 거제시가 지원할 수 있는 보상은 건물 감정가뿐이다. 다른 곳에 삶의 터전을 일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주민이 이주를 거부하면서 지심도 개발은 4년째 하세월이다. 결국 거제시는 강경 대응 카드를 꺼냈다. 현행법에 어긋나는 각종 불법 시설물과 위법 행위는 관계 기관에 고발하고 주민 생계와 직결되는 관광객 출입도 막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단전과 여객선(도선) 운항 중단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으름장을 놨다.

단전의 경우, 법적 권한은 없지만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자가발전시설 운영·관리권이 거제시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처럼 불법·위법을 사유로 단전한 사례도 있다는 설명이다. 여객선도 지자체로부터 적자를 보전받는 도선이라 지원을 중단해 운항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주민들은 일부 실정법을 어긴 것은 인정하지만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특히 이를 뻔히 알고 묵인해 온 거제시가 이제 와 문제 삼는 것은 개발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한 주민은 “2000년 화재를 비롯해 그동안 낚시꾼이 낸 불로 섬 전체가 화마에 휩싸일 뻔한 일이 수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화재를 진압해 섬을 지켜 낸 것은 주민이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주민과 행정이 ‘윈-윈’할 수 있는 묘책이 있는데도 거제시가 굳이 무리수를 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섬연구소 강제윤 소장은 “국립공원이면서도 주민들이 자유롭게 생업을 이어 가면서 살 방안이 있다. ‘마을 지구’로 지정받으면 된다”고 했다. 이는 국립공원 내에서도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부에서 만든 제도로, 지정 시 주택 증·개축은 물론 신축도 가능하고 민박이나 식당 영업도 할 수 있다.

반면 거제시는 법적 한계와 재정 여건, 지심도 반환 취지를 고려할 때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이다. 시에 따르면 마을 지구 지정을 위해선 현 불법 건물 양성화와 점유 토지 불하가 필수다. 그런데 자연공원법은 공원 내 국·공유지는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현재 지심도 내 모든 도로(탐방로)에 대한 분할측량과 지목 변경이 필요한데, 이 경우 막대한 시비를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거제시 관계자는 “지심도를 거제시민 모두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애초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면서 “현재 관련 용역이 진행 중이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모두가 상생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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