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863 >귀족과 민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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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정치권 거액 쌈짓돈 챙기더니 이제야 “특활비 제도개선…”>

어느 기사 제목인데, 엉터리다. 기사를 읽지 않고도 엉터리라고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쌈짓돈: 쌈지에 있는 돈이라는 뜻으로, 적은 돈을 이르는 말.(불우 이웃 돕기 모금에 쌈짓돈이나마 보태려고 합니다./할머니는 손자들에게 쌈짓돈을 꺼내 주었다.)

쌈짓돈이 ‘적은 돈’인데, ‘거액’이라는 말이 꾸미고 있으니, 말이 안 되는 것. ‘쌈지’가 ‘담배, 돈, 부시 따위를 싸서 가지고 다니는 작은 주머니’이니 큰돈을 넣으려야 넣을 수가 없다.

저런 착각을 일으키는 이유는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속담 때문인 듯하다. ‘쌈지에 든 돈이나 주머니에 든 돈이나 다 한가지라는 뜻으로, 그 돈이 그 돈이어서 구별할 필요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이 속담에서 쌈짓돈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으로 잘못 각인된 탓에 저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 것.(저 속담은 ‘쌈짓돈이 주머닛돈’으로 순서를 바꿔도 상관없다.) 그래도 못내 ‘쌈짓돈’이 ‘적은 돈’으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쌈지 공원’을 생각하면 되겠다. 이걸 설마 ‘작은 공원’이 아니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원’이라 생각하실 분은 없을 터.

일본 얘기를 다룬 아래 신문 기사에도 착각이 있다.

‘한마디로 여왕이나 여계 왕을 허용하자는 논의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들은 공주가 결혼 후 왕족 신분을 유지하는 것도 반대하는데, 여왕이 민간인 남성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잘못 쓴 말은 ‘민간인’이다. 표준사전을 보자.

*민간인(民間人): 관리나 군인이 아닌 일반 사람. 흔히 보통 사람을 군인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일견 보아도 병사는 아닌 것 같고 민간인 같다.<유현종, 들불>/좌익 사상을 가진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거기에 민간인 지하 조직이 합세한 것이었다.<조정래, 태백산맥>)

즉, 민간인은 ‘군인이 아닌 사람’이어서, 왕족·귀족의 상대어가 아닌 것이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평민(平民): ①벼슬이 없는 일반인. ②특권 계급이 아닌 일반 시민.(평민 출신./두 사람의 아버지는 모두 죄 없는 평민의 자손으로 먹을 것이나 지니고 있었고 피차 교제도 빈번한 터이었다.<한설야, 황혼>)

왕족이나 귀족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이처럼 ‘평민’이나 ‘일반인’이다. 예스럽게 하자면 ‘백성’쯤이 될 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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