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71) 구상조각 작가가 그린 소시민의 애환, 구본주 ‘아빠의 청춘Ⅱ’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얼큰하게 술에 취한 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바지춤을 붙잡고 위태위태하게 서 있다. 밤늦은 어느 길 구석에서 한번쯤은 목격했을 것만 같은 남자의 낯빛이 어둡다.

구본주 작가의 ‘아빠의 청춘Ⅱ’는 2002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버지’로 형상화되는 소시민의 애환을 그려냈다.

‘정리해고 때 잘리진 않을지’ ‘어느 쪽으로 줄을 서야 살아남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담아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온 어깨에 짊어진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구본주(1967-2003)는 ‘민중미술의 시대’라 불린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했던 386세대 작가이다. 그는 대체로 우리 역사와 사회의 각박한 현실에 주목했다.

구본주는 조각의 재료인 금속, 돌, 나무 등의 질감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은 작가로 손꼽힌다. 노동자의 삶과 투쟁, 힘겨운 일상을 강요당하는 나약한 개인으로서의 아버지 등 소주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소시민의 인생을 작품에 담았다.

억압에 대해 항거하기보다는 묘하게 웃다가도 코끝이 저려 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표현하는 것이 구본주 작품의 매력이다.

한국 구상조각의 전성기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구본주 작가는 안타깝게도 2003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보험사가 인정받는 예술가로서 그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도시일용노임’으로 보험금 기준을 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위상, 예술인 복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던 그의 삶이 초라한 가치로 산정되는 것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저 그런 소시민의 애환을 희화화한 구본주의 작품 속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작가만의 표현력으로 무기력한 소시민의 모습에 숨을 불어넣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류민주 부산시립미술관 기록연구사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