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북항 재개발, 시민과 함께 길 찾아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사업 초기 우리 동네 앞 경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북항 내 고층 개발도 부산 발전을 위해 찬성했었다. 그런데 일자리를 위한 기업 유치도 아니고, 또 초고층 주거 시설을 건립하면 어떻게 하나?” 얼마 전 시민토론회에서 나온 한 시민의 지적이었다. 10여 년 이상 지지부진하던 북항 재개발 1단계 지역에 최근 눈에 띄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59층짜리 이 건물은 이른바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시민은 또 “또 주거 시설이냐”며 혀를 찬다. 특히 인근 산복도로 경관을 지켜 내고 있는 동구 지역 주민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초고층 건물 신축에 시민 실망
개발 방향에 대한 근본 질문 제기돼

부산 역사를 바꿀 중요한 지역 사업
진행 과정 합의·정보 부재 가장 문제

시민과 함께하는 로드맵 구상 필요
시, 주도적 역할 통해 방향 모색해야


부산시는 올해 4월 이 시설의 건축을 허가했다. 동구는 물론 부산시민 전체로부터 많은 질타가 빗발치고 있다. 이에 대해 ‘또 하나의 난개발로 이어지는 토건 사업인가’ 아니면 ‘공공성이 담보된 시민을 위한 사업인가’라는 근본 질문이 제기된다.

북항 재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 현재 이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항 재개발의 진행 과정에 대한 합의와 정보 부재이다. 시민 대부분은 아는 바가 없고, 부산시도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 시민은 단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슬리퍼 신고 가서 즐길 수 있는 곳”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북항 재개발 지역은 부산의 공간 구조상 원도심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이곳에 대한 사업은 도시개발 사업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사업은 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도 없이 진행된다. 중앙정부 사업이라는 이유로 해양수산부 산하 부산항만공사(BPA)가 항만재개발법을 내세워 사업 초기부터 민간 사업자를 시행자로 선정해 진행했다. 이 때문에 부산시의 역할과 권한은 처음부터 없었다. 사업 계획에서 제시한 ‘국제 해양관광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목적은 해양수산부의 바람이지, 부산시민의 의견이 반영된 게 아니다.

해양수산부가 왜 이런 관광형 도시개발을 주도하는지 알 수 없고, 향후 BPA가 북항 일대를 관리할 도시관리청의 역할을 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나아가 부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역을 개발하는 이 사업에 대한 부산시의 장기 계획에 관해서는 시민은 더더욱 아는 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 세계 많은 근대도시는 도시계획과 연계한 항만 재개발을 통해 현대도시로 전환했다. 근대 산업도시 대부분은 자유무역과 물류 교통에 의지했고, 항만은 핵심적인 기반 시설이었다. 뉴욕, 런던, 함부르크, 요코하마, 시드니 등 세계 유수 도시들은 항만 물류를 중심으로 근대국가의 산업 발전을 도모했다.

각국은 현대에 들어와 항만 물류 기능의 재편과 도시발전 변화 요구에 따라 쇠퇴하던 항만 도시의 재개발을 다양하게 추진했다. 뉴욕 월스트리트와 런던 도크랜드는 근대 항만 물류 지역을 금융 국제비즈니스 중심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과 시드니 달링하버는 친수 공간 조성을 통해 문화·관광 중심으로 재개발됐다. 특히 재개발 권한이 중앙정부에서 시 정부로 전격 이양된 요코하마는 이로 인해 도심 지역과의 연계 개발이 가능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함부르크의 하펜시티다. 지속 가능한 워터프런트 조성을 목표로 경관 보호와 수변 보행길 조성, 3만 5000개 회사 유치와 4만 5000개 이상의 일자리 확보, 항구 역사의 철저한 보존, 시민과 함께하는 개발 과정은 전 세계 항만 재개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북항은 도시 내 핵심 거점을 연결하는 부산의 대들보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공공성을 바탕으로 제대로만 개발된다면 현재 부산의 도심 쇠퇴를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다. 영국 중앙정부 주도로 재탄생한 런던의 도크랜드처럼 금융 국제비즈니스 지역으로 키울 수도 있다. 제2의 혁신도시로서 지정한다면 문현동 금융혁신도시와 연계해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홍콩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다. 미나토미라이21이나 하펜시티 모델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담대한 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부산시는 중앙정부와 협력하면서 혁신적인 도시 디자인과 제도 개선, 시민 합의를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우리 북항은 이 기나긴 과정 끝에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미래 세대에 가치 있는 항만 재생으로 탈바꿈할까. 우리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은 부산시민 로드맵 구상이 필요하다. 1단계 사업은 이미 모든 절차가 끝났으니,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북항 재개발은 길을 잃었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부산시는 시민과 ‘함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북항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항해의 출발선에 설 준비를 마쳤을 뿐이다. 다음은 부산시가 시민과 함께 길을 찾을 차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