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절대, 가라앉아서는 안 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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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부력’ 스틸컷. 영화사그램 제공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이 울렁거렸다. 마치 내가 언젠가 그 배에 오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어서 빨리 그 배에서 내릴 수만 있다면, 아니 이제 그만 영화가 끝나기를 바랐다. 영화가 보여주는 삶이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질끈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끔찍해서 영화를 보는 일이 힘겨울 정도였다.

‘부력’은 인신매매로 팔려가 노예 노동을 겪어야 했던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지금도 동남아시아 해상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하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로드 라스젠 감독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대사도 음악도 없이 그저 노동 착취의 현장을 끈질기게 보여주고 있는 연출만으로 관객을 집중시키는 연출을 선보인다. 영화 제목 ‘부력’처럼 절대로 가라앉아서는 안 될 이야기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알리는 것이다.

인신매매·노예노동 피해자 증언 바탕
가난 탈출 꿈꾼 14살 캄보디아 소년
망망대해 지옥 같은 노동착취 마주해

불편하지만 어디선가 일어나는 현실
생생한 피해 경험 느껴지는 연출 눈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단지 조금 더 나은 삶은 살고 싶어서, 가족의 곁을 떠난 14살 캄보디아 소년 차크라. 태국의 파인애플 공장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긴 시간을 달려 차크라가 도착한 곳은 바다 한 가운데 허름한 고기잡이배였다. 어떤 설명도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 소년은 그곳이 어디인지, 월급이 얼마인지도 물을 수 없다. 그저 일을 하는 것 말고는 살아 돌아갈 방법이 없음을 이미 직감했는지 모른다.

배 위에 그물이 풀리자 생선이 쏟아진다. 차크라가 생선을 나르고 그물을 정리한다. 20시간이 넘는 노동에도 휴식시간은 짧고, 식사 역시 겨우 살아남을 정도의 양과 더러운 물뿐이다. 어선에 팔려온 그 누구도 머리로 향하는 총구가 겁이나 불평의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바다로 몸을 날리는 사람, 미쳐가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망망대해 허름한 배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모를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도망갈 생각도,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이제 차크라에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가족들과 밥을 먹던 평범한 일상은 사라졌다. 처음 배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차크라는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했다. 하지만 노동만 남은 배위에서 살아남는 것 말고는 어떤 대안이 없음을 깨닫는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처럼 차크라를 돌봐주던 케아 형이 처참하게 죽고 난 후부터, 차크라에게서 희망에 부풀어있던 소년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영화는 차크라의 변화 과정을 침착하게 보여준다. 즉 희망을 간직하는 것과 그것을 포기하고 생존만을 목표로 고민하는 차크라의 모습을 뒤따르는 것이다. 이때 관객은 차크라의 선택 앞에서 어떤 윤리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것은 생과 사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고통의 순간에 함께 아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독은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지만 노예 노동자들의 삶을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으로 다가가게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느끼도록 만드는 연출을 선택함으로 영화의 진실성을 높이려는 의도이다. 물론 ‘부력’이 주는 메시지가 불편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를 어느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실제 노예노동 피해자들은 태국 수산업 종사 인구 60만 명 중 절반이 되는 미얀마나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들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태국 수산업계에서 불법조업과 노예노동 등의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전한다. 오늘 아침에 우리가 먹은 음식을 생각해 본다면 ‘부력’은 그저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영화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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