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난에 학습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제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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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동아대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 소장/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

‘실패’를 조명하는데 ‘재난’만큼 좋은 것은 없다. 재난에 있어 ‘학습’은 정부 실패를 규명하고 더 나은 사회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다.

뉴스 매체가 재난 현장을 취재한다. 대형 참사의 극적인 장면이 송출되고, 가시적인 재산 피해와 인명 손실 그리고 슬피 우는 희생자 가족들을 담은 이미지가 방송되거나 인쇄된다.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재난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정부나 정치인에게 쏠리게 된다. 해당 재난이 ‘불가항력’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우리는 사회 공동체와 희생자를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주의를 돌리게 된다. 하지만 재난이 정책 부재, 누군가의 과실, 정부의 태만에 따른 결과라면, 정부와 정치인들은 재난의 책임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거나 ‘무언가를 학습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과정에 맞닥뜨린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학습의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재난 원인을 밝히기 위한 각종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조사·감사 및 청문회를 실시한다. 하지만 여론에 떠밀려 성급한 보고서가 채택되거나 발표된다. 유사한 재난이 재발되지 않기 위한 경우라면 해당 재난으로부터 ‘무언가를 학습’하거나 불가피한 재난의 경우라면 ‘재난에 대한 준비와 대응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재난과 관련된 학습은 공평하고, 설득력이 있고, 문제해결 가능성이 있는 권위적인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 재난 취약성을 제거하기 위한 예산, 인력, 조직 등을 강화하거나 확보하려는 노력을 위한 합리적인 권고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유사한 사건이나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또는 일어난다면 보다 잘 대비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지’ 진상을 규명할 수 있게 요구해야 한다. 따라서 재난 원인 관련 정보가 취합되고, 증거가 심리되며, 목격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수집하며, 보고서가 작성돼야 한다. 이러한 결과에 근거해 권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재난은 흔히 긴급한 인명구조 또는 정확하게는 예방→대비→대응→복구의 4단계(재난관리 4단계)로 이뤄지는 재난관리를 통해 일반 공중(公衆)과 관련을 맺는다. 각 단계에 따라 다양한 기관들이 관여하게 된다. 산림청은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산불방지 홍보 표지판을 세우고, 국토부는 산불 발생에 대비해 대피로를 지정하며, 대응은 소방이나 해양경찰 등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복구에는 조사관, 복구기금 담당자, 의료진 등이 관여한다. 이러한 단계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절차를 갖고 있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 19’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에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강원도 고성 산불’이 잇달아 발생했다. 우리는 이제 국가에 ‘누가 학습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다루면서 ‘무엇을 학습하는가’의 문제를 던질 시점이다.

‘코로나19’ 같은 인간 감염병 사례는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이 있다. ‘이천 화재 참사’ 같은 공사 작업 중 화재 사례는 2008년 이천창고 화재, 2014년 고양 화재, 2017년 동탄 메타폴리스 부속상가 화재, ‘대형 산불’ 사례는 2000년 동해안 산불, 2005년 양양·낙산사 산불, 2019년 강원도 산불 등 유사한 재난이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재난관리에서 확인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습이 필요하다. 재난 원인과 관련된 분석이나 평가없이 단순히 흉내 내지 모방하는 학습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유사한 대형 참사에서 드러난 학습의 증거를 확보해 실체적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심사숙고한 토론의 결과가 정책 개선으로 반드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학습이 일어났다는 일단의 증거를 시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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