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진 콘텐츠의 힘, 미디어 시장 재편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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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vs 딜라이브

갈수록 콘텐츠의 위력이 커지면서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왼쪽부터 드라마 도깨비, 사랑의 불시착, 슬기로운 의사생활. CJ ENM 제공

도깨비, 사랑의 불시착,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이코지만 괜찮아…. 국내를 넘어 일본·중국 등 해외에서 ‘K드라마’ 열풍을 일으킨 이들 프로그램은 CJ ENM 콘텐츠다. 자회사인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앞세운 CJ ENM이 ‘콘텐츠 강자’로 우뚝 서면서 국내 미디어 시장의 지형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PP-SO 프로그램 사용료 갈등
최대 PP CJ ENM “인상” 압박
‘콘텐츠 강자’ 높아진 위상 반영
‘블랙아웃’·수신료 상승 기로에
“가입자 피해 없도록 협상해야”







■콘텐츠 사용료 갈등 ‘점입가경’

9일 유료방송 업계에 따르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인 CJ ENM과 케이블TV사업자(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인 딜라이브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프로그램 사용료’를 둘러싼 두 사업자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직접 중재에 나서겠다고 알린 상황이다.

이번 문제는 CJ ENM이 지난 3월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안’을 딜라이브에 보내면서 시작됐다. 프로그램 사용료는 플랫폼 사업자인 SO가 콘텐츠를 사용하는 대가로 PP에 지불하는 금액이다.

CJ ENM은 당시 IPTV 사업자에게 30%,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에 20%, 개별 SO에는 15% 인상을 각각 결정하고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MSO인 딜라이브는 20% 인상 통보를 받았다. CJ ENM은 오는 17일까지 사용료를 인상하지 않으면 tvN, OCN 등 13개 채널을 한꺼번에 공급 중단(블랙아웃)하겠다며 ‘초강수’를 둔 상황이다. 채널 송출이 중단되면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딜라이브 가입자들은 이들 채널을 케이블 TV에서 볼 수 없게 된다.

■PP-SO 간 ‘힘겨루기’

양측은 이번 건을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CJ ENM 관계자는 “지난 3월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안을 공문으로 두 차례 발송한 뒤 5월 인상 비율 조정안을 다시 제시했다”며 “하지만 딜라이브는 당사의 어떤 공문에도 회신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딜라이브 측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CJ ENM에 피드백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딜라이브 측은 “현재 CJ ENM에 지급되는 프로그램 사용료는 전체 PP 사용료의 약 25%인데 이곳의 콘텐츠 사용료를 20% 인상하면 중소 PP 몫의 일부가 CJ ENM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CJ ENM은 유료 방송 중 유일하게 사용료를 연간 매출과 연동해 ‘정률제’로 지급하는 딜라이브 정책을 지적했다. 현재 딜라이브는 한 해 매출이 나오는 연말께 일정 비율을 프로그램 사용료로 책정해 1년 치를 정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갈등에서 오는 피해를 고스란히 시청자가 떠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협상이 결렬돼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하면 딜라이브 가입자들은 채널 선택권을 제한받게 된다.

반대로 프로그램 사용료가 큰 폭으로 인상될 땐 당장은 각 PP들에 돌아가는 사용료 비율이 조정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청자들의 케이블 TV 수신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한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유료 방송 시장에서 케이블 사업자는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시청자 수신료를 조정할 수 있다”라며 “두 회사가 고정 가입 시청자의 피해가 없도록 협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시대’에 달라진 PP 위상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달라진 PP의 위상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과거 상당수 PP 사업자는 SO로부터 프로그램 사용료를 책정하거나 권리 보장을 받는 데 한계가 있었다. 콘텐츠를 송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제한된 상황에서 PP는 채널을 소유한 방송 사업자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형 PP인 CJ ENM이 지상파만큼 크게 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값 받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현재 CJ ENM 계열 PP는 시청률은 물론이고 광고 단가도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초 발표한 ‘2019년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CJ ENM의 방송 광고 매출액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13.8%에 달한다. 이는 SBS, MBC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결과로 지상파 KBS가 기록한 13.6%보다 높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가 중요해질수록 PP들이 파워를 갖는다. 미디어 시장의 힘의 구조가 다시 짜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잘 만든 콘텐츠는 미디어 믹스 효과도 커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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