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거장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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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음악 한 곡이 맴돌고 있다. 우리 말로 번역이 불필요할 정도로 고유의 아우라를 뽐내는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 첫사랑의 아련한 이미지를 음악으로 그리듯, 연기처럼 흩어지는 기억을 선율로 조각한 이 테마는 흔히 ‘Deborah’s Theme’으로 지칭되며, 이 영화를 본 이들을 아련한 향수로 밀어 넣는 신비한 힘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를 이미 보고 음악을 들어서 그러한 향수가 가능한 것인지, 음악 자체로도 충분히 그러한 선율을 구사할 수 있는데 그만큼 강력한 영화 이미지가 곁들여지며 공감의 폭이 증폭된 것인지, 그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분간하기 어렵다. 아마도 유장한 영화와 그 시간을 반복해서 회억(回憶)하게 하는 선율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뭉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이 특별한 음악을 만든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현대영화와 영화음악의 관계를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든 이 거장의 이름은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였다.

지난 6일 별이 된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으로 세상 일부 천국처럼 바꿔
영화와 어울렸을 때 특유의 공감
영화와 음악 세계 거침없이 넘나들어

현대인들에게 힘과 용기, 위안 전해
다른 세상에서도 다른 향기 더할 듯


지난 7월 6일, 이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겼던 위대한 음악적 유산 중 ‘시네마천국’의 제명을 빌린 한 기사는 그가 ‘천국’으로 떠났다고 썼다. 그가 가는 곳이 천국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음악으로 이 세상의 일부를 천국과 비슷한 모습을 바꾸어 놓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음악은 좋은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비루한 세상에 힘과 용기와 때로는 위안과 기억을 남겨두었다.

한 사람이 거장이라는 칭호를 들으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연륜과 함께 타인의 공감이 겹쳐져야 한다. 어떠한 천재들은 대중의 환호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천재의 이름을 기억하고 뒤늦게 흠모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한때는 고흐가 그러했다. 반면, 처음부터 대중의 열광을 등에 업고 산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그러한 이들이 거장으로 남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은데, 우리가 스타라고 부르는 이들은 어쩌면 거장과 다른 인생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그들의 인생을 미리 추모해서 붙여놓은 호칭일 수도 있다. 그만큼 거장이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또 그에 걸맞은 삶을 살기는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엔니오 모리코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장의 조건을 갖춘 인물이다. 그의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영화와 어울렸을 때 특유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영화 자체를 소환하는 본연의 기능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이것은 자체로 자립적이면서도 남과 어울릴 줄 아는 품격을 지니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가 작업한 방식은 이러한 품격이 생성되는 이유도 암시한다. 그는 완성된 음악을 지인들에게 들려주고 조언을 구해 스스로 고치고 더하고 때로는 빼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최고에 오른 이였기에, 그의 행적은 특별한 느낌을 자아낸다.

대개의 우리에게 그러한 삶은 요원한 것이지만, 그러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행운인 것 같다. 그는 음악을 명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오히려 영화가 그의 음악을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두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행적을 몸소 보여 주었다. 이러한 행적은 거장이라는 특별한 인물들만 남길 수 있는 강력한 매혹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매혹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그 유려한 궤적을 끌며 이 세상을 떠돌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션’에서 한 남자를 휘몰아치던 ‘가브리엘 오보에’의 선율처럼, 강력한 폭포(음)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의 영혼이 기개를 펴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삼가 경의를 표한다. 그의 음악이 그러하듯, 그의 영혼 또한 다른 세상에서도 또 다른 향기를 더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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