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28)베니 그린 ‘Benny’s Cr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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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그린(Benny Green)은 1963년에 태어난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국내에서도 콘서트를 열며 재즈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탁월한 재능과 기술을 겸비한 수많은 연주자가 등장하고 있지만, 베니 그린을 그냥 시대의 걸출한 연주자로만 한정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90년대 서울에서의 한 무대였는데요. ‘100개의 황금 손가락’이라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10인의 합동 공연이었고 몇 해 동안 이어 갔을 정도로 국내 팬들의 반응 또한 좋았습니다. 10인의 피아니스트로 재즈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가장 촉망을 받는 신예들이 함께하는 일종의 축제 같은 공연이었죠. 심지어 브래드 멜다우와 같은 현재 재즈 신의 대표 주자도 100개의 황금 손가락 공연 시리즈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났었지요.

베니 그린은 당시 공연 참가 피아니스트 중 가장 신참이었습니다. 국내에는 앨범은 물론 인지도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그날의 공연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연주자가 바로 베니 그린이었습니다. 커튼콜 때 관객에게 가장 뜨거운 박수와 갈채를 받았던 연주자였어요. 그가 선배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관객에게 인사했을 때 쏟아진 수많은 환호. 그가 쑥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다시 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 무대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스윙’이라는 재즈를 대표하는 리듬이자 바이브를 그렇게 연주하고 표현하는 뮤지션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낡은 스윙을 이렇게 고전적으로, 더 충실하게, 보다 열정적으로, 이제껏 듣지 못했던 신선함으로 표현하는 뮤지션은 지금도 그가 가장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니 그린이 올해 ‘Benny’s Crib’이라는 새 앨범을 선보였습니다. 40분 동안 11개의 노래가 재생되는 이 앨범은 기존 앨범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렉트릭 피아노’라는 악기에 관한 앨범입니다. 피아노처럼 실제 건반을 눌러 해머가 건반의 현을 치게 되면 그 소리와 떨림이 전자적인 신호로 변형돼 앰프나 스피커로 출력되는 악기입니다. 피아노와 아주 유사하지만, 일렉트릭 기타와 같은 증폭과 확성을 통해 소리를 전달하지요. 우리가 요즘 ‘전자 피아노’로 알고 있는 소리는 이 시대의 아날로그 전자 피아노를 디지털로 재현하는 경우입니다.

앨범은 헤롤드 로즈가 만든 전자 피아노의 대표 주자 ‘펜더 로즈’라는 악기로 녹음했습니다. 더는 생산되지 않는 옛 아날로그 악기를 베니 그린의 곡으로 베니 그린이 직접 연주합니다. 이미 스윙을 오히려 그 예전보다 더 스윙답게 들려주었듯, 이 앨범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악기가 그 어느 때보다 진가를 발휘하도록 들려줍니다. 펜더 로즈라는 악기를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하고 즐겨 연주했는가가 음반을 통해 전달됩니다. 특히 펜더 로즈의 소리가 이렇게 정갈하고 힘있게 녹음된 음반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탁월한 사운드 완성도를 뽐내고 있습니다.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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