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도시국가' 부산,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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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사람이 곧 한울이다’(人乃天)를 기치로 내건 동학혁명의 정신적 지주는 천도교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1827~1898)이었다. 경주 출신이지만 관의 추적을 피해 보따리 하나 들고 36년간 전국 200여 곳을 떠돌아 ‘최보따리’로도 불린 그는 때(時)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이름까지 경상(慶翔)에서 시형(時亨)으로 바꿨다. “대저 도는 때를 쓰고 활용하는 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나아가지 못하면 이는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다”며 용시용활(用時用活)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묵눌’(愚默訥: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의 자세를 견지했다.

‘포스트 코로나 컨퍼런스 부산’
불확실성의 시대 부산 미래 제시

앞으로 새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감인대’ ‘우묵눌’의 정신 되돌아볼 때

지역 희망은 지역민에게서 나와
인재 기르고 ‘현인 모임’ 잇따라야



동학에 때를 기다리는 ‘우묵눌’이 있다면 불교에는 ‘감인대’(堪忍待: 참고, 견디며, 기다려라)가 있다. 조계종 종정을 세 차례 지내며 오늘의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우뚝 세운 동산 스님(1890~1965)의 가르침은 ‘감인대 정신’으로 집약된다. 특히 6·25 전란으로 고통받던 민중을 거둬 먹이며 “세상이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고 다독이고는 했다. 성철 스님이 입적하기 전 범어사를 찾아 스승인 스님의 부도에 삼배를 드리고 돌아간 일화로 유명한 동산 스님은 세간 출세간 가릴 것 없이 희망을 가르친 삶의 큰 스승이었다.

‘우묵눌’ ‘감인대’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되는 시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세상은 성서 묵시록에 나오는 아마겟돈을 연상시키는 ‘대환란’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다시는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에 나오는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발길에 차이는 세상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희망의 때는 올 것인가.

미래학자 아지즈 바카스는 ‘불확실성의 시대, 부산의 미래는?’을 주제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컨퍼런스 부산 2020’에서 영상 메시지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택에서 한국 전통 장롱을 배경으로 찍은 영상 메시지는 ‘큰 깨달음’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용은 이렇다. 2020년 새로운 바이러스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났는데 부익부 빈익빈, 가족 간 대화 단절, 대기오염, 플라스틱 해양오염 등 오늘날 세상이 처한 현실이 그것이다. 하지만 치료제 개발로 새 세상이 도래한다는 해피엔딩을 예고한다. 영상은 잠자리에서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끝난다. “사람들을 다시 결속시키기 위해 왜 바이러스가 필요했던 거죠?” “아들아, 때로는 기분이 더 좋아지기 전에는 아픔을 겪어야 한단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봉쇄되어 살아가는 삶을 배워야 한다는 미래학자는 현재의 봉쇄에서 다음의 봉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새로운 봉쇄 상황이 닥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세 페스트가 르네상스를 열었듯 코로나19로 신-르네상스가 도래한다고 전망한다. 부산은 과거 역사 속에 존재한 도시국가(city-state)를 떠올리며 싱가포르, 함부르크, 로테르담 등 다른 항구 도시국가들과 협력하는 길을 찾아 나서라고 권유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새로운 바이러스와 끊임없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며,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는 결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가 내다보는 미래다. 전란과 혁명의 시기에 다듬어진 감인대와 우묵눌이라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디엔에이(DNA)가 새삼 빛을 발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새로운 세상은 고금을 막론하고 힘든 현실을 인내하며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자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금 여기’의 로컬을 살아가는 부산의 미래는 자명하다. 도시국가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자치와 분권을 누리는 부산을 향해 현재의 불확실성과 끊임없이 싸우며 차근차근 희망을 가꿔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어느덧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여론이 결집한 것은 부산의 미래를 봤을 때 좋은 징조다.

사람이 한울이고 누구나 불성을 갖고 있기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결국엔 사람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 부산의 미래 또한 사람을 떠나 상상하기 어렵다.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는 데서 희망은 싹튼다. 대면(콘택트·Contact)이든 비대면(언택트·Untact)이든 적절한 거리 두기는 있을지언정 소통 자체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인재를 기르고, 지역 인재의 유출을 막는 한편 외부 인재의 조력을 한데 녹이는 ‘소통의 용광로’에서 부산의 미래는 나온다. 지금은 다양한 층위의 ‘현인 모임’이 부산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야 할 때다. ‘포스트 코로나 컨퍼런스 부산 2020’은 그 첫발인 셈이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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