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82. 영도 복징어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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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징어’ 비린내 폴폴 날리던 구불구불 옛길

영도 청학동과 동삼동을 잇는 복징어고개 전경. 복징어는 복어. 강원도에 오징어 넘쳐 나듯 부산엔 복징어 넘쳐 났다. 고개 아래 있던 포구가 복징어고개 이름 유래가 된 복징포다. 박정화 사진가 제공

강원도에 오징어가 있다면 부산엔 복어가 있었다. 오징어 넘쳐나듯 복징어 넘쳐났다. 그런데 복징어가 뭐지? 뭘까? 복어다. 복어를 복징어라 했다. 지금은 복어, 복어 그러지만, 한때는 복징어, 복징어 그랬다. 복어는 낯설게 들리고 복징어는 친숙하게 들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복징어 알 먹고 소녀 중독 사망’ ‘복징어에 중독’. 그 증명이 1950년대 신문기사 제목이다. 사망했다는 제목은 1957년 4월 7일 신문이고 중독 제목은 1958년 2월 4일 신문이다. 둘 다 부산일보지만 당대는 어느 신문이든 어느 방송이든 복징어라 그랬다. 문학 역시 그랬다.


 [ 미니공원 기념비 ]

혹은 또, 복징어 알을 주워 먹고 돌아온 열 살배기 앞에, 눈에 흰 창을 들내는 엄마의 얼.

- 김구용(1922∼2001) 시 ‘맹(盲)’ 부분



청학동·동삼동 걸친 복징포 위 고개
인근 바다서 잡힌 복어 다 모이던 곳
도로 포장·매립 속 ‘의지의 꽃길’ 변모
조선 태종 활 쏘던 당당한 기운 남아

복징어고개란 이름은 복징포에서 나왔다. 고개 아래 포구가 복징포였다.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복어는 여기로 다 왔다. 복징포 저쪽은 부산 영도 청학동, 이쪽은 동삼동이었다. 그러니까 복징어고개는 청학동과 동삼동을 이었다. 지금은 태종로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불리는 4차선 도로가 반세기 전만 해도 생선 비린내 폴폴 날리는 구부정한 고개였다.

복징포 가는 날. 태풍급 바람이 영도를 두들긴다. ‘한진중공업’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신도브래뉴아파트를 지나 영도구청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접어들 때만 해도 바람은 밋밋했다. 청학시장 지나면서 점점 세지더니 고갯마루 가까워지자 태풍급으로 격상한다. 맞바람 피해 몸을 한참이나 돌려세우고 나서야 다시 걷는다.

“이렇게 언덕진 시장은 처음 봤지요?” 시장을 보자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홍보 문구가 발목을 붙잡는다. 고갯길은 잠시 잊고 ‘좋은 물건 싸게 파는 청학시장’으로 들어간다. 지금은 시장이지만 1760년대 한국 최초로 여기에 고구마를 심었다. 그땐 산비탈이었다. 영도 고구마가 있었기에 조선은 그나마 보릿고개를 근근이 넘을 수 있었다. 산비탈에 들어선 시장인 만큼 상당히 가파르다.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언덕진 시장’을 내세운다. 말이 길어지면 고구마 넝쿨에 칭칭 감기지 싶어 은근슬쩍 발을 뺀다.

‘태종로 423 영도구청.’ 오르막 끝나는 고갯마루는 영도구청 차지. 건물 외벽에 박은 큼지막한 주소판은 조선 태종 임금인 양 당당하다. 도로명이랄지 주소랄지 ‘태종로’는 실제로 태종 임금에서 비롯했다. 태종로 끝은 영도 태종대. 태종이 활 쏘며 시간을 보냈다 해서 얻은 지명이다. 태풍급 강풍이 아무리 두들겨도 도도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 건 영도가 ‘태종급’ 섬인 까닭이다.

복징어 황토 고갯길은 언제 포장했을까. 답은 ‘의지의 꽃길’ 기념비에 있다. 도로포장과 꽃길 조성을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고갯길 미니공원에 있다. 시청 자리 중앙동 롯데백화점에서 태종대 입구까지 12km 도로포장과 확장 공사는 1972년, 1973년 이때 이뤄졌다. 자발적 참여를 내세운 무임 중노동에다 꽃길 조성에 든 8700만 원까지 민간에서 떠맡아 뒷말이 많았다. 천불 날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공사가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이 현지에 와 치하했고 그러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구청에서 내려가면 동삼 주공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있지요? 거기가 경곕니다.” 복징어고개 유래가 된 복징포는 어딜까. 일대가 매립돼 포구 흔적을 찾기란 난망하다. 부산시 디지털 백과사전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청학동과 동삼동의 경계 지역에 있던 포구’가 복징포다. 청학동과 동삼동 경계는 어딜까. 무턱대고 찾아간 영도구청 문화관광과 직원은 친절하다. 이 책 저 책 뒤져서 복징어고개 자료를 복사해 주고 PC를 켜 경계를 알려 준다.

‘복징포 뒤쪽에는 미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보물섬 영도 이야기>는 영도구청이 펴낸 스토리텔링 100선. 구청 직원이 복사해서 건넨 100선 일부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인다. ‘의지의 꽃길’ 미니공원 앞이 복징포였다지 않은가. 거긴 미창석유에서 영도하수종말처리장 일대. 지금은 ‘해양로’로 불리는 도로변 평지지만 복어로 호가 났던 포구가 거기 있었다!

미창석유 가는 길은 옛길. 구불구불하다. 얼른 가 보려는 급한 마음에 더 구불구불하다. 구청에서 나와 미니공원 도착 직전 ‘해양로246번길’ 표지판이 가리키는 내리막길이 그 길이다. ‘영신칼스토리’ 간판이 보이면 길을 꺾어야 한다. 미니공원이 가까우니 들렀다가 되돌아가도 좋다. 공원엔 박정희 친필이지 싶은 ‘의지의 꽃길’ 기념비가 있고 누가 봐도 입이 벌어지는 낙락장송이 있다. 김소운 문학비, 한찬식 시비, 장승, 솟대가 볼 만하다. 6·25 때 이 자리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보도연맹사건 연루자 원혼을 달래는 원혼비(寃魂碑)는 들뜨던 마음을 머쓱하게 한다.

드디어 복징포 자리. 왼쪽은 미창석유, 오른쪽 끝은 국립한국해양대가 들어선 조도다. 조도는 섬 안의 섬. 해양대는 복이 많다. 섬 안의 섬을 가진 대학이 세계에서 몇이나 될까. <보물섬 영도 이야기>에 조도 사진이 나온다. ‘1952년 조도 앞의 고기잡이’ 풍경이다. 물결은 세차고 홀로 고기 잡느라 돛을 내린 목선은 위태위태해 보인다. 매립은 됐어도 태풍급 바람은 내가 선 복징포 자리를 연신 두들긴다. 물결 세찬 바다에 홀로 돛 내린 목선인 듯 내가 봐도 내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나는 언제쯤이나 ‘태종급’ 사람이 되려나.



▶가는 길=시내버스 8, 30, 66, 88, 88-1, 101, 113, 186, 190, 1011번을 타고 ‘한진중공업’에서 내려야 고개 오르는 맛이 난다. 청학119안전센터 갈림길 오른쪽 오르막이 청학시장, 영도구청, 의지의 꽃길로 이어지는 복징어고개다. 소방서 갈림길에서 직진해 청학수변공원, 미창석유, 국립해양박물관으로 이어지는 해양로는 매립지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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