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소 사실 누가 알려 줬나” 청와대·경찰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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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성추행 의혹’ 파문

고한석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체 누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피소 사실을 알려줬을까.

박 전 시장에게 4년간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는 8일 오후 4시께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조사는 9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박 전 시장은 같은 날인 9일 오전 10시께 시장공관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고, 다음 날 새벽 시신으로 발견됐다. 고소장이 접수된 날 피소 사실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인지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른바 ‘피소 사실 유출 미스터리’를 놓고 시민의 눈이 일제히 청와대와 경찰로 쏠리면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젠더특보, 고소장 접수한 8일
“짚이는 일 없느냐” 박원순에 물어
靑·경찰 “통보한 적 없다” 부인
시민단체 “비밀 누설죄” 고발

고한석 전 비서실장 참고인 조사
“오후 1시 39분 통화” 내용 함구


■측근들 피소 사실 사전에 알았을까

박 전 시장은 서울시 젠더특보인 임순영 씨에게서 피소 사실을 처음으로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씨가 지난 8일 오후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박 시장에게 ‘짚이는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는 것. 일각에서는 고소장이 접수되기도 전에 피소 사실을 임 씨가 인지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젠더특보는 서울시 정책에서 성평등을 구현하라고 임명된 특별보좌관이다. 피해자가 여러 차례 시청 내부, 특히 일반직이 아닌 별정직 공무원이 상주하고 있는 6층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러나 임 씨를 비롯해 이들 별정직 대부분은 시장 사망 이후 면직처리되면서 사태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태 때와 판박이처럼 똑같은 양상이다.

경찰은 15일 오전 고한석 서울시 전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3시간 가까이 사망 전 행적과 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고 전 실장은 박 시장이 실종된 당일인 9일 오전 공관을 찾아갔고, 박 전 시장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인물이다. 그는 박 전 시장과의 마지막 통화에 대해 “(9일 오후)1시 39분으로 기억한다”고 했지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의 질문에는 “경찰에 다 말씀드렸다”며 답하지 않았다. ‘젠더특보가 피소 사실을 보고한 걸 알고 공관에 갔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고 답했다.



■청와대와 경찰 모두 침묵

‘피해자의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중요한 수사 정보가 수사기관 외부에 있는 가해자에게 전달되는 건 공무상 비밀 누설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보수·진보 성향을 가리지 않고 시민단체와 변호사단체가 잇달아 피해자 신원이 누설된 건과 관련해 청와대와 경찰을 검찰에 고발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과 이를 보고받은 청와대가 여권 관계자를 통해 피고소인에게 불법적으로 피소 사실을 알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인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와 변호사단체인 ‘한반도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은 15일 “피해 여성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중요 수사 정보가 가해자 쪽에 누설된 것은 중대 범죄”라며 청와대와 경찰, 서울시청 관계자들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여성인권위원회도 “성희롱과 성추행 피해를 밝힌 고소인의 용기를 지지한다”면서 “고소장 제출 사실이 알려져 피해자 신원이 누설된 건 별도의 범죄인 만큼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시장은 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1988년 창립멤버다.

피소 하루 만에 박 전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불거지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담담한 모습이다. 청와대 측은 앞서 13일 의혹에 대해 “(박 전 시장에게)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 역시 청와대에 박 전 시장의 피소를 보고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입단속에 한창이다. 경찰 측은 “청와대에는 보고했지만 서울시나 박 전 시장에게 이를 알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피소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건 서울시도 마찬가지여서 ‘피소 사실 유출 미스터리’는 의혹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편, 경찰이 박 시장의 조만간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할 예정이어서 휴대폰 내에서 사망 경위와 피소 사실 인지 여부 등이 파악될 가능성도 높아가고 있다. 휴대폰은 10일 새벽 박 시장의 시신 부근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경찰 측은 “포렌식 작업은 사망 경위에 국한된다. 수사 정보 유출 의혹이나 성추행 고소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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