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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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축하해

잘해봐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

천천히 풀 때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렇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나는 길을 걸었다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 놓은 길이었다


-김이듬 시집 중에서-


꽃다발을 받았을 때 풍겨오는 향기. 이미 발목이 잘린 꽃이라면 그 향기는 시취에 가깝다. 꽃다발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그날의 스타이다. 땅바닥에 있는 거친 돌이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었으니 그만한 노고가 뒤따랐을 것이다. 그들에게 절정의 목숨을 바치는 꽃다발. 꽃다발의 숨소리에는 발목을 잘릴 때도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틀어막은 입이 있다. 그런 의미로 꽃다발을 받는 일은 서로의 비명을 위로하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야 할 길을 걸었을 뿐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철저하게 보호되었던 그 길이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 놓은 길이었다면 불법의 길 아닌가. 부디 몰랐다 하지 마시길.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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