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해양수도’에 걸맞은 아량으로 ‘선원격리시설’ 수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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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해양수산부장

도시는 무엇으로 말하는가. 유서 깊은 건축물, 하늘로 치솟은 첨단 랜드마크, 독창적인 역사 예술 문화 산업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결국 시민이 곧 그 도시인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올 1월 20일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미증유의 바이러스 전쟁 중이다. 미지의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공포는 우리를 배제와 차별, 혐오로 빠져들기 쉽게 했다. 중국 우한 교민 격리 시설에 극렬 반발하던 주민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우리 방역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설을 받아들였다.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 그 바탕 위에 시민들의 절제와 배려로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방역 성과를 내고 있다.

‘해양수도’라는 부산에서 외국인 선원 임시 격리 시설이 2주째 논란이다. 지난 13일부터 해외에서 들어온 배에 탄 선원은 2주 자가격리가 의무다. 세계 대부분 항만에서 금지한 선원 교대를 위해 입항하는 외국인 선원들은 귀국 교통편이 마련될 때까지 잠시 머물 시설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부산시와 협의해 지난 13일 부산과 전남 여수에 1곳씩 임시생활시설을 지정했다. 여수에선 이 시설이 그대로 운영 중인데 부산은 첫 지정 호텔을 주변 상인 반발로 바꿨고, 두 번째 호텔에 대해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한마디로 천덕꾸러기 신세다.

최근 잇달아 외국인 선원 확진자가 나와 시민 불안이 고조됐기에 자치구 반발은 이해가 간다. 주민과 구청장 반발을 지역이기주의(님비)로 매도하고 싶지도 않다.

시설 선정과 운영을 맡은 해수부가 자치구 의견까지 수렴하지 못해 반발을 부른 실책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가 비상사태에 쏟아져 들어오는 선원 격리가 더 급했기에 기초지자체 동의까지 받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해수부 관계자의 말이다. 게다가 음성 판정 선원만 잠시 모으고 외출을 차단하는 상근 관리 인력까지 배치해, 지역 감염 확산 예방대책이 있다는 것은 무시되고 있다. ‘기피 시설’ 있는 지역에 관광객이 오겠느냐는 막연한 공포가 더 위력적이다.

이미 해운 분야 검역 기준은 항공에 비해 훨씬 엄격하다. 공항으로 입국하는 여객은 증상이 없으면 자가격리나 임시생활시설 입소 후 3일 이내에야 진단검사를 받고, 항공 승무원은 원칙적으로 의무 진단검사가 없다. 이에 비해 선원들은 항구에 발 딛는 순간 전원 진단검사를 받고, 음성이어도 자가격리 2주가 의무다.

전국적으로 중대본과 지자체가 운영하는 임시생활시설이 72곳이다. 하지만 전국 어디서도 이번처럼 주변 상인들과 자치구가 나서 쫓아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해양수도’를 내건 부산이기에 더 의아하다. 바다와 선원, 개발도상국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아산과 진천을 떠올린다. 입소를 막겠다던 주민들은 결국 수용했고, 떠날 땐 따뜻하게 환송했다. 언제든 나도 격리자가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 나만큼이나 당신도 소중한 생명이라는 인간애가 지금 부산에 필요하다. 선원 임시생활시설을 둘러싼 논란은 부산이 어떤 도시여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부산은 무엇으로 말할 건가.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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