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파문 /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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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권혁웅 시집 중에서-


유난히 집중 호우가 많은 이번 장마다. 곳곳에 속출하는 피해현장과 이재민의 고충으로 티브이 화면은 젖은 걸레처럼 축축하다. 그런데 나의 하루라는 것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대 빗줄기를 보며 낭만에 푹 젖었으니 이래도 되는가 싶다. 젖은 걸레와 젖은 낭만을 나란히 말리며 우산 아래 누군가를 기다리던 한때를 떠올린다. 발목 아래 끊임없이 피어나던 작은 파문들.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는 사이 새로운 파문들이 도착했었지. 소멸도 생성도 아닌 그것이 잡음이라면 나는 더욱더 귀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그때 골똘히 그 사람의 부재에 주파수를 맞추려 하기나 했을까. 새삼 소식이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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