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866 >아쉬워라 표준사전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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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기도 못하는 게 날려 한다./기기도 전에 날기부터 하려 한다.’

국립국어원이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은 이런 속담을 ‘쉽고 작은 일도 해낼 수 없으면서 어렵고 큰 일을 하려고 나섬을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기다’가 ‘날다’보다 행동이 느리기에 성립하는 속담들인 것. 한데 그러면, 이런 문장은 좀 어색하지 않은가.

‘송가인 씨가 출연한 예능 프로 시간대는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연예인이 와도 경쟁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돕니다.’

날고 기는 연예인? 나는 건 이해가 되지만 ‘기는 연예인’이라니…. 그런데, ‘날고 기다’만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개의 브랜드가 생기고, 난다 긴다 하는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내놓는 시대다.’

이처럼 ‘난다 긴다 하다’라는 표현 역시 어색한 것.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나는 건 모르겠지만, ‘기다’라니…. 하지만, 우리는 저런 말을 남보다 잘한다는 뜻으로 쓴다. 표준사전 ‘날다’ 뜻풀이에도 이렇게 나온다.

‘[관용구]난다 긴다 하다: 재주나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다.(이번 학술회의에는 전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학자가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기다’가 그 ‘기다’가 맞는지 몹시 수상스러운데, 항간에 떠도는 ‘‘난다’는 윷놀이 판에서 말이 나는 것이고, ‘긴다’는 긴에 있는 상대편 말을 잡는 것’이란 설명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긴’은 ‘윷놀이에서, 자기 말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

한데, 민중서림에서 펴낸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2005년)이 묘한 뒷맛을 남긴다.

*난다긴다하다: 재주나 행동이 매우 민첩하고 비상한 데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난다긴다하다’를 관용구가 아니라 한 단어로 처리한 점. 이러니 저 ‘긴다’가 ‘기다’에서 온 게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뭉게뭉게 솟구친다. 게다가,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서 펴낸 <현대조선말사전>(1981년)에도 역시 한 단어로 처리돼 있다.

*난다긴다하다: 재주나 활동력이 남보다 썩 뛰여나다.

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조선말사전>(1992년)에도 ‘재주나 활동력이 몹시 민첩하고 뛰여난 데가 있다’라는 뜻풀이와 함께, 한 단어로 실려 있다. 그러니, 저 어색한 관용구 ‘난다 긴다 하다’는, 차라리 한 단어로 처리했으면 싶다. 또, 그렇게 할 동안 독자들께는 아래 말로 바꿔 쓰시길 권한다.

*날고뛰다: (비유적으로)갖은 재주를 다 부리다. 또는 비상한 재주를 지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날고 기다’는 폐기해야 할 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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