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유배 온 추사 선생의 마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요즘 지자체들이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내놓는 아이디어들을 보면 참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 가령 제주도의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길이 그렇다. 추사가 생면부지였을 제주도에 처음 내려 유배지까지 이른 그 길을 관광상품으로 만들다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주 공무원들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배지에 내린 추사의 마음이 과연 지금 그 길을 걷는 관광객들의 마음처럼 행복했을까 싶기도 하다.


공기업 합격했는데 지방 발령 나면
임용 거부하거나 사표 쓰겠단 반응
지방에 대한 서울 사람 시각 드러내

행정수도 문제 정치권이 또 쟁점화
지역 균형개발 논리로 내세우지만
지방에 대한 존중 회복 우선시돼야



서울 지역의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는 커뮤니티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읽은 글이다. 한 학생이 “공기업에 합격했는데 지방에 발령이 난다면?”이라는 질문을 올렸다. 그런데 그 커뮤니티에 온 서울 대학생들의 거의도 아니고 대부분도 아니고 모두가 하나같이 답하기를 “지방을 왜 가?”란다. 지방을 가느니 차라리 임용을 거부하든가 사표를 쓰겠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 취업이 많이 어렵다지만 서울의 명문대 학생들은 또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개중에는 지방에 가느니 차라리 백수로 지내겠다는 대답도 꽤 되었다. 지방을 가든 말든 그것은 당사자의 마음이겠지만, 정작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학생들의 글에서 엿보이는 지방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시각이다. 가령 주거나 교통 환경이 안 좋아서 지방에 가기 싫다거나, 의료와 문화 인프라 등이 나빠서 싫다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그 학생들의 태도는 조금 더 노골적이든 조금 더 둘러말하든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 내가 왜 하층민으로 살아야 돼 하는 듯했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 때는 단순히 돈과 권력이 서울에 집중된다는 뜻이었는데, 이제는 서울 사람과 서울 아닌 사람은 신분이 달라진 것이다. 한 때 인기 있었던 드라마에서 도망가다 잡힌 노예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었던 것처럼, 내 얼굴에도 지방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느낌이다.

행정수도 문제가 정치권의 쟁점이 되고 있다. 더러는 부동산 문제의 실패를 덮으려는 정부와 여당의 술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행정수도 문제는 가까이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되었던 정책이고, 더 멀리는 박정희 정부도 추진했던 정책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가장 유력했던 후보지가 바로 지금 세종시 근처였다. 꼭 그런 의도는 아니더라도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려는 목적은 있지 않겠느냐는 분들도 있는 듯 하지만 나는 이런 의견에도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 볼 때 서울의 집값을 잡으려고 행정수도를 건설한다는 것은 너무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때는 남북관계가 불안하다 보니 안보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의 균형개발을 말씀하는 분이 더 많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의 균형개발이라는 말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해 왔지만, 서울에서 온 공무원들은 가족은 모두 서울에 둔 채 이런저런 특혜로 지방에 아파트만 사 두더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물론 아주 일부의 몇몇 사람 이야기라고 믿고 싶다. 행정수도 이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방에 대한 존중을 회복하는 데 있어야 한다. 세종만이 아니라 부산도 광주도 대전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방은 능력이 없어 서울에 못 간 사람들, 서울에서 낙오해 유배되어 온 사람들, 이등 국민들과 하층민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단지 지역의 이름이 다를 뿐 서울 사람들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우리 국민들이 사는 곳이다. 행정수도 건설은 그런 당연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