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는 불안해” 밖으로 나온 차량에 주차장 된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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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안전도시 부산’

29일 오후 부산 동구의 한 아파트 주변에 차량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29일 오후 1시께 부산 동구 A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통로에 즐비한 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지 내 도로는 물론 주변 인도까지 빽빽이 주차돼 있다. 약속이나 한 듯 ‘불법 주차’를 하고 있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반면 지하주차장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지하 1층에는 비교적 주차 차량이 많은 편이었지만, 지하 2층부터는 텅텅 비어 있었다. 최근 폭우 여파 탓에 아직 바닥에 흙먼지가 깔려 있지만, 주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 아파트 주민 B 씨는 지상에 차량이 가득하고 지하는 빈 것에 대해 “비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 멀쩡한 차들이 침수돼 망가지는 걸 뉴스를 통해 봤다”며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지하 주차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우에 지하주차장 피해 속출
아파트 주변 불법 주차 급증
침수돼도 지원·보상 못 받아
“당분간 단속 유예를” 목소리도

부산에서 폭우로 차량 침수 피해가 잇따른 뒤 주거지 지하주차장 대신 인근 도로나 인도에 주차를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지난 23일 내린 폭우에 지하차도 참사가 빚어지고 지하주차장에서 차량 침수가 생기면서 시민들 사이에 ‘지하 공포감’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차도나 인도에 불법 주차를 하더라도 지자체가 단속을 유예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A아파트처럼 지하 대신 지상에 주차를 하는 현상은 부산 곳곳에서 나타난다. 동구 범일동 B빌딩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지하주차장 침수를 겪은 뒤 주변 갓길에 주차를 하거나 지상 유료주차장에 주차한다. 김 모(32) 씨는 “한 사무실에서만 직원 4명이 차량 침수 피해를 봤다”며 “지하주차장 입구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두며 철옹성 같은 벽을 만들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불안감에 지하에서 차부터 빼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동천 범람의 피해가 컸던 남구와 동구 등지에서만 벌어지지 않고, 부산 곳곳 저지대 주변 지하주차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 23일 폭우로 해운대구 센텀시티 주상복합 건물 지하주차장에서는 순식간에 들어찬 빗물로 수억 원에 달하는 외제차 수십 대가 침수됐다. 이들 차량 소유주는 고민이 깊다. 차량 소유주 C 씨는 “이번에 직접 피해를 겪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일이 있을까 걱정돼 당분간 아파트 지하주차장 대신 인근 지상주차장에 장기 주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있어도 불법 주차를 택하는 이유는 차량이 침수되면 보상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보험을 든 운전자는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폐차 비용 지원과 신차 취득세 감면을 받을 뿐 정부 재난 지원금 대상이 아니다. 온전히 보상을 받기 어려운 데다 침수된 차량은 중고로 팔기도 쉽지 않다. 장마가 끝나지 않은 지하주차장 주차가 두려운 이유다.

기초 지자체가 당분간 지상 주차 단속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국지성 호우나 갑작스러운 비 피해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동구 관계자는 “A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침수 피해가 확인돼 당분간 단속을 유예하기로 했다”면서도 “침수 피해가 확인되지 않은 곳에서는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유예하는 게 어렵다”고 밝혔다.

부산 다른 구청 관계자는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는 법 적용을 유예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침수 피해를 확실히 규명하면 나중에라도 과태료 환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우영·박혜랑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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