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없는 자는 가진 것도 빼앗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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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논설위원

‘가진 자는 더욱 많이 가져 풍요로워질 것이고,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나오는 이 구절은 2000년이 지난 오늘 이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부산에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2002년 중국 민항기의 김해 돗대산 충돌사고로 시작되었다. 부·울·경 주민 800만이 간절히 원하는 동남권 관문공항 문제는 20년 가까운 시간만 낭비한 채 제자리에서 빙빙 선회하고 있다. 2001년 개항한 인천공항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난다. 활주로 2개로 출발한 인천공항은 국제선 여객 기준 세계 5위, 화물처리 실적 세계 3위의 톱클래스 공항이 되었다.

인천공항 세계 톱클래스 공항 우뚝
사천 항공정비사업도 빼앗을 기세

수도권·비수도권 양극화 너무 심해
서울로만 몰리면 집값 절대 못 잡아

국가균형발전 안 되면 모두 힘들어
동남권 관문공항 이제는 결단할 때



인천공항에는 벌써 제5활주로와 제3터미널 건설이 확정됐다. 심지어 국회에서는 항공정비사업까지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경남 사천시가 조성 중인 항공정비사업 전문단지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방 인구를 무섭게 빨아들이는 인천은 20년 뒤에 제2의 도시 부산 인구마저 추월할 전망이다. 인구 11만 명 남짓한 사천시는 6년째 내리 인구가 줄어 지방소멸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부산에는 관문공항, 사천에는 항공정비사업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게 옳다.

정부가 온갖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서울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심리 말고는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휴가차 제주에 다녀온 후배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청년들의 사고가 좀 무섭게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에서 왔다고 소개한 청년들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일산·분당·안양·의정부 등에서 왔다는 것이다. 김해·양산·울산·창원에 살면서 부산에서 왔다고 말하는 격이다. 이들이 태도와 행동의 근거로 삼는 준거집단은 서울이었다. 서울에서 살고 말겠다는 사람이 널렸으니, 서울에 아무리 집을 많이 지어도 늘 모자랄 수밖에 없다.

‘서울=일등 시민, 지방=이등 주민’으로 인식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난번 칼럼에다 “지금은 전국으로 사람을 흩어버릴 방안보다는 모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방법을 고민할 때다”라는 중앙일보의 주장이 지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썼다. 이 신문은 그 뒤에 “공항신설 부산민심 백가쟁명 번잡하니 균형발전을 위해 청와대도 옮기려거든 세종시 말고 가덕도로 옮겨야 태평성시가 오리라”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조롱을 시평이라며 또 실었다. 노골적으로 서울만 편들고 지방을 무시하니 전국지 자격도 없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어 걱정이다. 일반적으로 양극화는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사회계층이 양극단으로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양극화라는 단어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부자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은 소수고, 다수는 저소득층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올해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으로, 비수도권 인구 2582만 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진짜 양극화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 서울 집값 파동은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인구가 주는데 서울에만 자꾸 집을 늘려서 나중에 어쩌겠다는 말인가. 지방이 다 소멸하면 서울에 모인 사람들도 절대 편안하게 살지 못한다.

국가균형발전의 추진력은 정치에서 나온다. 초선의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국내 소득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앞으로 예산을 검토할 때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삼겠다”라고 발언해 큰 주목을 받은 사실에 희망을 가져본다. 21대 국회 지역구 253석 가운데 수도권 의원 수가 121명으로 절반 가까이 된다. 비례 대표 47명도 8명을 제외한 39명이 수도권 출신이다. 국회 전반기 상임위 및 특위 17개 위원장 가운데 14개 위원장이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라고 한다. 인천공항에 항공정비사업을 가능하게 바꾸려는 관련법도 수도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하는 것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거대한 수도권 플랫폼에 더이상 빨려들지 않도록 뭉칠 때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는 각오로 뜻을 모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끝으로 오랫동안 지역에 천착해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동물학대방지연합만 해도 지역에서 동물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뛰어가서 처리하는데, 회비나 후원금은 늘 서울의 큰 단체로만 몰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과부 설움 홀아비가 안다고, 지역 언론 종사자로서 공감이 간다. 개나 고양이나 다 서울로 이사해서, 지역에는 생명의 씨가 마르는 게 아닌가 정말 걱정이 된다.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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