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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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부산진구 의사회 회장 내과 전문의

최근 대학병원의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무엇이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할 그들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거리로 내몰았을까?

지난 7월 말 여당과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은 당정협의회에서 ‘의대 정원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을 통과시켰다. 골자는 향후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고, 2024년부터 국립 공공보건 의료대학의 개교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의료인들은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는 현장 의료인들로부터 의견 수렴도 없이 정부가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쏟아냈다.

정부의 졸속적인 정책에 의사협회와 전공의 단체 등 의료인들이 파업까지 불사하며 반발하자, 정부는 ‘먹고살 만한 자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치부하며 예의 적폐 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의료인들의 자발적 헌신에 ‘덕분에’ 이벤트까지 펼쳤던 정부에 배신감마저 든다.

정부는 ‘의사 인력이 부족하고 진료과목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주장은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우선, 한국의 의사 수는 정말 부족한가? 일각에서 한국의 의사 수가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인구 10만 명 당 의사 숫자는 적은 것이 맞다.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는 의사와의 만남 자체가 어려우니, 숫자가 많아야 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좁은 나라에서는 단순히 의사 숫자보다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실제, 우리나라는 의사들을 만나는 과정이 아주 단순하다. 그러다 보니 국민 1인당 의료기관 이용건수가 세계 1등을 차지하고 있다. 국토 단위면적당 의사 수는 세계 3위권이다. 또, 진료 횟수 등에 제한이 없다 보니 언제든지 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의료 기관 확대를 당면한 제반 의료적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지팡이’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혼란이 있었다. 이런 혼란은 질병 자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입국 차단과 같은 초기 방역의 실패로 환자가 갑자기 폭증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시적인 병목 현상이었다. 이를 두고 정부나 시민단체들은 공공의료의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공공의료 확충에 목을 맨다.

공공 의대의 신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숫자만 늘려보겠다고 한다. 싸울 총도 없는데, 징병만 해 놓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오래전부터 의사들이 문제를 제기해왔던 진료 과목의 불균형에 대해서도 고민할 여지가 많다. 의과대학에는 25개 가까이 되는 과목이 있는데, 이중 생명을 직접 다루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를 메이저(Major)과라고 부른다. 그만큼 중요하고 힘들고 위험할 때도 많다.

그런데 일부 기피 과목 의사들은 법적, 경제적 안전장치 없이 과도한 업무에 노출돼 있다.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위험을 오롯이 의사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히포크라테스 정신만으로 버텨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매년 400명 의대 정원 증원만으로 의사들의 선택지가 바뀌어 질까? 공무원도 아닌 그들이 의무기간 복무 이후에도 과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젊은 의료인들은 거리에 뛰어나간 이유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근시안적인 탁상행정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변해갈 한국의 의료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지만, 틀린 것을 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정부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의료계와 진지하게 상의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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