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무릎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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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에 있어 ‘무릎’의 가치는 양면적이다. 그것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과 달리 두 발로 서서 손을 사용할 수 있었고, 큰 두뇌를 가지게 됐다. 반면 긴 다리뼈들을 연결하기에 취약한 이 부위는 까딱하면 사람을 불구자로 만들기도 한다.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육체노동자나 운동선수가 병원에 차고 넘친다. 노화의 대표적 증후로도 꼽힌다. 오죽하면 노후 필수 대비책 중 하나로 이 관절의 건강을 꼽겠는가.

무릎은 특히 좌식 생활을 하는 동양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서 있다가 자세를 낮춰서 앉거나 누울 때 가장 먼저 바닥에 닿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 어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는 무릎 꿇는 것을 매우 꺼렸다고 한다. 그런 행위는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들 같은 자유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신념의 발로였다. 심지어 희랍의 사자(使者)는 똑바로 서서 페르시아 황제를 알현했다는 얘기까지 전해 내려온다.

현대에 들어서는 무릎을 구부리는 게 저항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미국 내 인종 차별에 항의해서 한쪽 무릎만 세우는 최근의 행위를 말한다. 시위대는 물론 진압에 나선 경찰까지 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는 평등을 존중하는 마음을 신체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 가치를 훼손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자연스레 무언의 항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극도로 낮추며 존경과 겸손을 드러내는 동작이다. 경외심의 다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스며들어 있다. 여기에는 속죄, 통회(痛悔)도 포함된다. 늘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게 바로 존경과 겸손의 시발점이니까.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광주 5·18 묘지에서 무릎 사죄를 했다. 김 위원장은 “부끄럽고,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 벌써 100번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다”고 고개도 숙였다. 보수정당 대표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이에 평가가 다양하게 나온다. ‘정치적인 요식 행위’나 ‘고도의 퍼포먼스’라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역사의 전진, 긍정 신호라는 호평도 이어진다. 어쨌든 폭염으로 달궈진 바닥에 닿은 80세 노 정치인의 무릎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동서화합은 통일과 균형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이므로. 이준영 논설위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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