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블라인드 채용 APEC기후센터, 왜 질책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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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상청 산하로 부산 해운대에 있는 APEC기후센터(APCC) 경영지원실장 A 씨의 채용을 문제 삼고 있다고 한다. 환경노동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국회를 방문한 권원태 원장 등 APCC 관계자들에게 A 씨의 채용 문제를 추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가 환경 및 기후 관련 근무 경력이 없다는 점을 들며 부정 채용 아니냐는 질책성 발언을 했다. 한 의원은 채용 당시 공고문, 평가절차와 항목, 인사위원회 구성 명단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APCC를 압박해 A 씨를 업무 배제하고 권 원장은 책임을 지라는 태도로 보인다.

야당 보좌관 출신 뽑았다고 기관 핍박
민간 기업 채용 비리 뭐라고 할 것인가

A 씨는 대외 교류협력과 홍보, 경영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경영지원실장으로 채용됐다. 경영지원 직렬이기에 기상 관련을 전공하지 않고, 환경 및 기후 관련 근무 경력이 없어도 얼마든지 채용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딴지를 걸고 나서는 이유는 그가 미래통합당 심재철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17대 국회 때부터 주로 통합당 계열 의원실에서 의정활동을 보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개인 신상을 뺀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민주당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면접관 5명 중 4명에게 최고점을 받았다니 충분히 자격을 갖춘 인사를 채용했다는 판단이다.

통상 ‘블라인드 채용법’으로 불리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19년 3월 민주당이 주도해 처리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에 이르기까지 채용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고 구직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블라인드 채용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채용된 인사에 대해 야당 출신이라고 해서 여당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의회 업무에 전문역량이 있는 사람을 기관이 필요해서 뽑은 것이다. 특정 정당 출신을 뽑았다고 공공기관을 괴롭히면 자칫 국가 경쟁력까지 떨어뜨리게 된다. 여당이 공공기업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민간 기업의 채용 비리에 대해 뭐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공공기관의 기관장, 감사, 사외이사 등 주요 고위직에 정계 출신 인사들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4·15 총선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낙선한 여권 정치인이 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이른바 '꽃보직'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지금 민주당이 APCC의 공정한 블라인드 채용을 문제 삼을 처지인가. APCC는 APEC 회원국 합의에 따라 부산에 설립됐다. APEC 운영기금에서 일부 지원도 받는 국제적인 성격의 기후전문기관이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APEC기후센터 블라인드 채용 논란을 속히 잠재우고 오히려 제도 정착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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