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후 안전 공언하고도 침수·누수, '명품 원전' 맞나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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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3·4호기 안전 괜찮나

2014년 9월 신고리 4호기 건물 안에서 케이블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확인된 신고리 3·4호기 공급 케이블 556㎞ 가운데 122㎞가 교체됐다. 부산일보DB 2014년 9월 신고리 4호기 건물 안에서 케이블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확인된 신고리 3·4호기 공급 케이블 556㎞ 가운데 122㎞가 교체됐다. 부산일보DB

한국이 독자 개발한 ‘3세대 가압경수로(APR1400·발전용량 1400㎿급)’ 즉, 신고리원전 3·4호기는 △규모 7.0 지진 대비 내진설계 강화 △해일 대비 방수문 설치 △중대사고 발생 때 수소제거설비 설치 등 다양한 안전 장치를 갖췄다. 그런데 지난달 23일 내린 폭우 때 송전설비가 침수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주장하는 ‘명품 원전’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원전 전문가들은 이번 침수를 계기로 신고리 3·4호기는 물론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까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기부 2011년 50개 안전책 수립

2014년 고리 2호기 배전반 침수

이번에는 신고리 3·4호기 송전설비

과잉출력 논란,UAE 부품 가져와

밸브누설 사고로 신한울 부품 전용

설계부터 꼼꼼하게 재점검해 봐야


■정말 송전설비만 침수됐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와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한국전력공사 부산울산지역본부가 지난달 23일 내린 비 때문에 신고리 3·4호기에서 침수가 발생한 장소로 시인한 곳은 스위치야드 제어동 지하와 가스절연모선(GIB) 터널 두 곳이다. 해당 설비는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외부 전력망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터빈 건물 등 발전소 일부에서도 비가 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수원이 터빈 건물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추정되는 물방울을 막기 위해 전기패널 커버를 설치했다는 게 근거다. 이에 한수원 측은 “외부 공기를 흡입해 터빈 건물 내로 공급하는 팬 그릴에 고온다습한 공기가 들어오면 응축수가 생긴다”면서 “응축수 유입을 막기 위해 전기패널 보호 커버를 설치했다”면서 빗물 유입을 부인했다.

하지만 한수원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게 원전 전문가의 지적이다. 보통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에너지로 물을 끓여 발생하는 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은 엄청난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냉각도 해 줘야만 한다. 또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공조 시스템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터빈 건물 내부에 응축수가 생긴다는 건 한마디로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터빈건물 내부에서 응축수가 발생한다는 건 처음 들어봤다. 물의 외부 유입이 아니고서는 터빈 건물 내에서 응축수가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면서 “이러나저러나 다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1조 쏟아붓고도 침수 또 못 막아

원전 운영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물이 일으키는 재난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3월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당시 규모 9.0 지진이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뒤 해일이 덮쳤고,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6기 중 오쿠마 마을 쪽의 1~4호기가 침수됐다. 곧 냉각장치 작동이 중단됐고, 노심용융과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대거 유출되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부산에서도 2014년 8월 25일 부산 기장군에 187㎜의 비가 쏟아지면서 고리 2호기 취수건물 내 배전반이 침수돼 취수 펌프가 정지했다. 한수원 측은 배수펌프를 가동했지만, 급격한 빗물 유입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고리 2호기를 수동으로 정지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의 원전 방재 대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해 5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가동 중인 전국 21개 원전에 대해 대지진, 해일과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할 수 있도록 안전 장비를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모든 원전 부지가 완전 침수되는 상황에서도 원전에 비상전력 공급이 가능하도록 비상디젤발전기 시설 등에 방수문과 방수형 배수펌프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그런데도 빗물이 유입돼 원전 가동이 아예 중단됐고, 지난달에는 최신형 원전 송전설비가 침수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에너지정의행동 강언주 활동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침수 피해에 대비한다 해도 원전이 안전하게 지켜지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재난이 예상된다면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것보다 선제적으로 멈추는 것도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고 말했다.


■APR1400, 정말 믿어도 되나

최첨단 기술의 접목체로 찬양받는 신고리 3·4호기지만, 안전성에 끊임없는 논란이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2007년 11월에 착공한 신고리 3호기의 상업운전 목표 시점은 애초 2013년 9월이었다. 하지만 2013년 4월 케이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고리 3호기 케이블 교체 작업에만 1년 이상이 허비됐다.

2016년 8월에는 시운전 중 원자로와 터빈 발전기 출력 편차 교정을 위해 수동 정지했다. 당시 원자로 출력 90%에 터빈 발전기 출력은 95%여서 ‘과잉 출력’ 논란에 휩싸였다. 원전의 과잉 출력은 고장의 원인이 되는 데다 운전원이 알아채기 전에 과열을 일으키고 시간이 지나면 냉각수가 증발할 가능성도 있다. APR1400은 직전 모델인 ‘한국 표준형 원전(OPR1000)’보다 핵연료 다발이 64개 더 많은 241개를 장전할 수 있어 과잉 출력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수원 측은 신고리 3호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국산 벤투리관을 교체하기 위해 UAE 바라카 원전에서 해당 부품을 가져왔다. 또 신고리 3호기에서 밸브 누설 사고가 발생하자 가스가압기안전방출밸브를 신한울 1·2호기 부품에서 전용했다. 신고리 3호기의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사실상 ‘부품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서 교수는 “신고리 3·4호기는 케이블 시험성적서로 홍역을 치렀고, 앞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속 조치가 이뤄진 뒤 건설된 원전이다. 그런데도 침수가 됐다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며 “신고리 3·4호기의 설계부터 다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석하·권승혁·이승훈 기자

hsh03@busan.com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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