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광기와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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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광복절 날 두 가지 사건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광복회장이 광복절 기념식사에서 친일파 청산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몇몇 야당 정치인들과 보수단체가 발끈하고 나선 일이다. 제주지사는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게 모두 죄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념식사 어디를 읽어보아도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이들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은 없다. 다만 일제의 앞잡이로서 같은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죄를 지금이라도 제대로 묻자는 말밖에는.

친일 청산 다룬 광복절 기념사 시끌
어린 목숨 전쟁터 내몬 친일 지도층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심연 드러내

광화문 집회 신자 코로나 급속 확산
교회 목사가 진단 받지 말라고 선동
타인 생명도 볼모 삼는 광기 무서워



또 한 가지 사건은 몇몇 교회가 주최하고 낙선한 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정체를 모를 무슨 부대 대표까지 다양한 인사들이 참석한 광화문 집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모든 국민에게 주어져야 옳다. 집회를 허용한 판사와 사법부를 비난하는 이도 많지만, 나는 집회 신청이 적법하게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허용한 결정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벽에서 뛰어내릴 자유가 있다고 실제로 뛰어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로나19가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소중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기본권은 아껴 두어야 옳지 않으냐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안전을 넘어 타인의 안전마저도 해치면서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니 참으로 황망한 일이다.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인사들 가운데도 친일파가 적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초대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는 일본군 대좌로서 식민지 청년들에게 전쟁에 나가 천황폐하를 위해 죽으라고 연설했다. 광복회장께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낸 이도 어린 여학생들에게 정신대에 나가 보국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물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시인, 작가, 언론인 등 이런 사회지도층 인사가 한둘이 아니다. 내가 이들의 행위에 경악하는 것은 친일을 넘어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친일파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의 사회지도층이라면 당연히 젊은 세대를 향해 우리는 죽더라도 너희는 살아서 더 나은 미래,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라고 말해야 옳지 않은가? 그런데 군인이든 교육자든 어떻게 어른이 되어서 겨우 스물도 안 된 어린 목숨들을 전쟁에 나가 죽으라고 말한단 말인가?

광화문 집회의 참석자들을 통해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참석자들, 특히 어떤 교회의 신도들은 방역당국의 진단 명령에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확진을 받고도 도주하거나 심지어 방역요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한다. 남이 아니라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인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알고 봤더니 이 교회의 목회를 맡고 있는 이들이 우리 교회 신자는 무조건 확진 판정이 난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면서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진단도 받지 말라고 선동했다고 한다. 목사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정치적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도들의 생명을 볼모로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교회와 신앙을 떠나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목숨을 걸고 교회를 지키라고 강요하는 이들의 행태는 천황폐하를 위해 전쟁에 나가 죽으라고 가르치던 일제강점기 사회지도자들의 행태와 똑같다. 그래서 무섭다. 이런 지면에 글을 쓰는 이라면 당연히 이런 광기와 맹목의 시대일수록 인간성과 이성의 힘을 믿자고 말해야 옳은 줄은 알지만,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광기를 직접 목격하니 너무 무서워서 도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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