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김해신공항 검증 발표, 또 넘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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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잠시 한숨을 돌리는 듯싶었던 코로나19가 광복절을 지나면서 다시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면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국가의 행정 역량이 코로나19 방역에 집중되면서 다른 현안에 관한 관심은 아무래도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다층적인 인간의 삶을 고려할 때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또 짚어야 할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부산·울산·경남이라면 단연코 김해신공항 문제가 그렇다.

김해신공항 문제를 떠올리면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의 돌’이 생각날 때가 있다. 알다시피 그리스 코린토스 지역의 왕인 시시포스가 신들을 기만한 죄로 나중에 저승에서 받은 죄가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이었다. 시시포스가 죽을힘을 다해 바위를 정상 근처까지 밀어 올리면 바위는 속절없이 다시 굴러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이를 되풀이해야 한다.

기대했던 8월도 결론 없이 넘길 듯
수차례 지연에 지역민 ‘희망 고문’

이젠 구체적인 발표 일정 내놔야
청와대·총리실, 더는 외면 안 돼

공항 확장안 이후 4년 허송세월
기약 없는 기다림, 조속히 끝내야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의 발표가 또 이달을 넘길 듯하면서 목이 빠져라 하고 기다리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심정이 이와 같다. 이번에는 무엇이라도 결론이 나오겠지 하며 잔뜩 고무됐는데, 속절없이 다음으로 미뤄지면서 울화통만 속으로 쌓인다. 시간이 지나 또 기대했던 발표 예정 시기가 다가오면 이번에야말로 결말이 날 것이라는 희망에 마음이 벌렁거리지만, 이번에도 ‘역시나’다. 애태웠던 검증 결과에 대한 기대는 헛헛한 한숨으로 흩어지고 열패감만 남을 뿐이다. 벌써 몇 번째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지 속만 타들어 간다.

부·울·경에서 김해신공항이 소음·안전·환경 훼손 등 측면에서 관문공항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결론 낸 때가 작년 4월, 국토교통부와 부·울·경 3개 단체장이 총리실 검증 결과에 따르기로 합의한 게 같은 해 6월 20일이었다. 오래지 않아 결판이 날 것처럼 여겨졌던 검증 결과는 이후부턴 사실상 ‘희망 고문’의 연속이었다.

한시가 급한 부·울·경은 작년 연말까지 결과 발표를 촉구했다. 그러나 총리실은 검증위원회 출범부터 ‘거북이 모드’였다. 국토부·3개 단체장의 합의 이후 무려 5개월여가 지나서야 겨우 위원회가 구성됐다. 늦게 출발한 만큼 빠른 진행이 상식이지만, 국토부의 갖은 견제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 연말 시한이 무산된 뒤 4·15 총선 전까지라도 결과를 촉구했으나, 이는 다시 6월 말, 8월 말로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지기만 했다. 지역은 그러는 동안에도 총리실에서 나올지 모르는 토막 정보라도 기대하며 귀를 쫑긋거렸다.

기대했던 8월도 벌써 끝자락이다. 이번에는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며 품었던 기대감도 역시 헛꿈이 됐다. 더구나 코로나19 대유행 조짐에 밀려 얘기를 꺼내기도 조심스러운 판국이다. 그럼에도 헛헛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총리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만 마음속에 쌓인다.

이미 검증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수차례나 나왔다. 그런데 언제쯤 검증 결과를 발표한다는 구체적인 일정은 여전히 깜깜하다. 이달 초 100페이지에 달하는 김해신공항 관련 자료를 부산시에 처음으로 요청했다는 청와대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렇게 또 어물쩍 8월을 넘길 태세이고 보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은 이제 김해신공항 발표를 목 놓아 기다리는 지역민을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발표 일정을 내놓을 때가 됐다. 부·울·경 지역에 그토록 희망 고문을 했으면 그렇게라도 하는 게 최소한 도리다.

지역에선 김해신공항 발표가 연말로 미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올해를 넘겨 내년 4월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 전까지 갈 것이라는 추측부터 아예 내후년 대선 때까지 또 우려먹을 것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식 예상도 하고 있다. 모두 청와대와 총리실이 발표 일정만이라도 똑 부러지게 내놓지 않으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러는 사이 대구·경북은 자체 신공항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이전 부지를 둘러싼 갈등도 최근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발맞춰 홍준표 의원은 며칠 전 통합신공항을 중·남부권 물류 중심 관문공항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행정·재정 지원을 법률로 규정하는 특별법의 입법 추진을 밝히기도 했다.

김해신공항보다 속도를 내는 듯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진행을 시샘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김해신공항의 깜깜이·느림보 진행을 방관하는 듯한 청와대와 총리실의 행태에 박탈감을 느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한 것이 벌써 2016년 6월. 이후 만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김해신공항은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얼마나 더 속을 끓이면서 기약 없는 기다림의 터널을 지나야 끝을 볼 수 있을까.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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