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871. ‘유래없다’는 유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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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여러 번 얘기했듯이, 언어 능력이라는 건 구별 능력이기도 하다. 구별 능력을 다른 말로 바꾸자면, 비슷하게 생긴 말을 제대로 골라 쓰는 능력. 그러니 이리저리 말을 헷갈리게 쓰거나, 말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말글 능력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 퇴직연금의 적립금이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일견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고령화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뭔가 좀 있어 보이는 글이라도 오자 하나, 잘못 쓴 낱말 하나면 글 전체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이상한 말은 ‘유래’.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유래(由來): 사물이나 일이 생겨남. 또는 그 사물이나 일이 생겨난 바.(한식의 유래./유래가 깊다./유래를 찾기 힘들다.) 「비슷한말」 내력(來歷)

이런 뜻풀이를 보자니, 뭔가 보기글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아니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유례(類例): (주로 없거나 적다는 뜻의 서술어와 함께 쓰여)①같거나 비슷한 예.(그들의 잔혹한 통치 정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독재자 개인을 숭배하는 그들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②이전부터 있었던 사례. =전례.(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변./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호황.)

이러니, 보기글에 나온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고령화’에서 ‘유래’는 ‘유례’의 잘못이었다. ‘유래’는 ‘시작’, ‘유례’는 ‘전례’로 바꾸면 알기 쉬울 터. 그래도 헷갈린다면, ‘유례’가 주로 ‘없거나 적다는 뜻의 서술어’와 함께 쓰인다는 뜻풀이를 참고하면 되겠다.

<“미친X” “멍청이” 미·중 사상 유래 없는 역대급 막말 전쟁>

<배민, 요금체계 개편에 소상공인 ‘반발’..“유래없는 수수료 폭등”>

이 제목들에 나온 ‘유래 없는’과 ‘유래없는’ 역시 ‘유례없는’이라야 했다. 표준사전을 보자.

*유례없다: ①같거나 비슷한 예가 없다.(이번 사건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다.) ②전례가 없다.(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유례없는 불황.)

이러니 막말 전쟁이나 수수료 폭등이 이전에 없었던 심한 수준이라는 얘기를 하려면 ‘유례없다’를 써야 하는 것. 게다가 ‘유래없다’라는, 그런 우리말은 없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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